INSIGHT

화물전용 지하철이 강남역을 통과한다면

by 콘텐츠본부

2016년 06월 08일

글. 전수룡 기자
 

Idea in Brief

 

점점 늘어나는 도심물류 수요로 인해 새로운 운송모드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혼잡한 도심을 벗어난 대체물류수단으로 ‘지하철’을 제시한다면 어떨까. 아직까지 대규모 구축된 선례가 없는 지하물류는 그 수요와 효율성이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능성에 투자하고 있는 해외사례는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는 어떨까. 화물지하철이 강남역을 가로지르는 발칙한 상상을 해봤다.

 

 

 

 
지하철은 포화된 도심의 육상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운송수단이다. 지하철은 현대에 들어서 대도시의 교통체증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교통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한국 같은 경우 지옥철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포화된 교통수단인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 또한 충분히 효율적인 수단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반증하는 사실은 아닐까.
 
그렇다면 현재 대부분 여객운송수단으로 효율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지하철을 화물운송수단으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한 번 발칙한 상상을 해보자.
 
세계의 지하물류
 
(1) 스위스 : 지하물류를 구축하라
 
IEEE(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에 따르면 지상 물류 수송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스위스가 지하 공간을 통해 화물을 나르는 기술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스위스의 수송전문 연구기관인 CST(Cargo Sous Terrain)가 지난 2월 자율 주행 무인 화물차와 지하도로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CST는 향후 15년 동안 스위스의 화물 수송 수요가 현재보다 45% 증가하여 육상 교통의 대혼란이 발생할 것이라 예측했다. 이에 대비하고자 50m 지하에 길이 67km, 너비 6m 규모의 화물 전용 선로 구축을 계획 중이다. 첫 터널은 취리히부터 남서쪽 방향에 있는 베른까지 66.7km 구간에 건설된다. 그 중간에 지상과 지하를 있는 네 군데의 물류 거점을 확보할 계획이다. 최종적인 목표는 루체른과 제네바까지 연결하는 전국적인 물류 거점을 확보하는 것이다.
 
▲ CST 지하 화물수송 자율주행차량 상상도 (자료= IEEE SPECTRUM)
 
전기로 작동하는 이 무인 자율 화물차는 일반 승객들이 타는 지하철 선로와는 별개의 선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24시간 화물수송이 가능하다. 지하배송 시스템의 동력은 지상에 건설되는 중간 거점에 설치되는 태양열 시스템과 재생 에너지를 활용할 전망이다. 때문에 시간절약과 친환경 교통이라는 이점이 있다. CST 관계자는 “육상으로 움직이는 화물 트럭들은 각 물류거점과 가까운 위치로 근거리 배송 시에만 활용할 계획”이라며 “이로 인해 도로상의 집중되는 화물 트럭의 숫자를 상당수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하물류를 완성하는 데는 34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비용이 수반된다. 현재 스위스 정부는 이를 직접 투자하는 대신 민간자본유치를 통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입장에서는 세계적으로 선례가 없는 이 시스템에 거금을 투자하는 것이 쉽지 않다. 때문에 스위스 정부는 지속적인 연구와 검증을 통해 2030년까지 중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 CST 지하 도로망 개념도 (자료= IEEE SPECTRUM)
 
(2) 영국 : 현존하는 지하물류
 
영국의 경우 이미 지하 선로를 이용한 화물 운송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재밌는 것은 따로 선로를 개설한 스위스와는 달리 일반 지하철 선로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국의 지하 화물 운송은 이미 오래 전부터 기업체에서 나오는 재활용 물품이나 폐자재를 운반하는데 사용됐다. 그만큼 도시 외곽까지의 선로 인프라 구축이 잘되어 있다는 뜻이고 그와 함께 국민들이 화물이 일반 여객 선로를 통해 운송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다는 뜻이다.
 
 
이에 더해 영국에서는 물류만을 위한 화물차 연구도 따로 진행되고 있다. 지하전문 건설회사 몰솔루션(Mole Solution)은 영국 노스햄프턴 지역에 시험 트랙을 설치하고 몰(Mole)이라는 이름의 무인 지하 수송 화물차를 테스트하고 있다. 이 화물차는 스위스의 사례처럼 새로운 터널을 개통해 24시간동안 화물운송 전용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시간절약이라는 이점을 얻을 수 있다. 물론 터널을 새로 개통한다는 측면에서 부가적인 비용은 수반된다. 그러나 여객용 지하철보다 훨씬 작은 터널 규모 덕분에 반대로 비용절감이 가능하다는 평가 또한 존재한다. 이에 더해 자기부상 원리를 이용해 화물차를 움직이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 몰솔루션의 자기부상 무인화물차 몰(Mole) (사진= Mole Solution)
 
몰은 1.3m에서 2.4m 지름의 튜브(터널) 안쪽으로 운행토록 설계되어 있다. 자체적인 모터나 동력원 없이 중앙 통제 하에 이동한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상하차 과정을 전면 자동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몰솔루션에 따르면 공항, 항만, 철도와 연결된 물류 거점에 이런 지하 화물 운송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물류 배송 효율성을 높이고, 쇼핑몰이나 마트에도 물건들을 보다 빠르게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영국의 지하물류 역시 스위스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문제점은 비용이다. 물론 일반 여객용 지하철을 개통하는 것보다는 저렴하겠지만, 지하에 수백km가 넘는 선로를 구축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비용 대비 효과를 증명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영국의 지하물류 역시 당장 실현하기엔 무리가 있다. 때문에 영국 역시 현실화를 위한 중장기적인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화물전용 지하철이 2호선을 가른다면
 
스위스와 영국이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지하 물류에 투자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하물류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과거 국내 지하물류 적용을 연구했던 박혁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해외사업처 과장은 ‘시간’과 ‘공간’ 측면에서 지하물류의 장점을 언급했다.
 
먼저 시간 측면의 장점을 살펴본다. 지하물류는 24시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끊임없는 물류 운송이 가능하다. 이에 더해 국내 및 국외, 대륙 간 터널을 구축할 경우에는 날씨,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빠르게 화물을 보낼 수 있다.
 
물론 국내 환경과 여건을 생각했을 때 지하물류 도입은 다소 회의적이다. 현재 한국과 같은 경우 일반 승객용 지하철 노선을 더욱 확장하고 그에 따른 비용투자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하물류가 미래지향적인 운송수단이지만 승객용 지하철 인프라 구축에 집중되고 있는 현 상황을 기반으로 봤을 때 투자비용이나 수요 측면에서 너무 먼 이야기가 된다는 이야기다. 이에 더해 국민의 의식 또한 영향을 미친다. 앞서 언급했듯 영국의 경우 승객용 지하철 노선을 화물용으로 쓴다는 사실에 거부감이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르다. 가령 수시로 연착되는 한국 러시아워에 승객용 지하철 선로에 화물용 지하철이 동시 운용될 경우 승객의 불만은 물론, 안전문제까지 제기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여 가까운 미래에 국내 지하물류를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가령 사람들이 지하철에 몰리는 시간을 피해 물류를 활용할 수는 없을까. 박혁 과장은 “새벽 1시부터 5시 사이에 수요가 몰리는 편의점 물류, 그 중에서도 수요가 많은 냉동식품에 대한 콜드체인 물류운송에 지하철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 지하물류 운용에 시간에 따른 융통성과 범용성을 갖도록 시스템을 기획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과장은 이에 더해 “도심 외곽에 위치한 철도 차량기지나 물류 창고 내 공간을 활용하여 화물을 집하하고 지하철역 내 물류 거점을 마련한 후 아마존의 KIVA와 같은 소형 운송 장비를 이용한 새로운 물류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두 번째는 공간 측면의 장점이다. 박 과장에 따르면 지하 물류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온라인 마켓, 의약품, 식료품 등에 대한 수요를 해결 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화물지하철이 12개의 화물칸으로 나뉘어져 있다면 각 구간을 적절히 분배하여 실온, 냉장, 냉동물품에 대한 운송을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공간의 효율화는 물론이거니와 정시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발짝 앞서가기 위한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대규모 지하 물류 시스템을 구축한 사례는 아직까지 없다. 기술적인 측면의 문제는 아니다. 효율성이나 수요에 대한 시스템적인 연구가 아직 부족한 것이 문제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국내의 경우 지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지하물류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특히 2012년엔 서울시 물류기본계획에 ‘지하철을 이용한 그린물류 시스템 구축’이라는 주요추진과제가 발제된 적이 있었지만 현재까지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하물류의 장점은 CO2 저감이나 육상교통 혼잡에 따른 대체제의 기능이다. 그러나 기업의 니즈는 이보다는 이륜차, 전기차를 활용한 라스트마일 배송에 집중됐다. 상대적으로 지하물류에 초점을 맞출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성공적인 선례가 없다. 소비자 수요와 시스템 효율성이 증명되지 않아 선뜻 대규모 투자를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 대체 운송수단은 필요하다. O2O, 온디맨드, 당일배송 등 운송수단에 대한 다양한 니즈가 증가하고 있는 지금, 트럭에 의존한 기존 물류체계만으로는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여러 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당장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무인자동차, 드론, 육상로봇 배송같은 SF영화 같은 이야기가 현실로 들어선다면 가득 찬 육상, 공중 운송수단을 대체하기 위한 지하물류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대두될 수도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소설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연구를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이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서는 속단할 수 없다. 국내 상황에 맞춰 지하물류에 대한 실험을 지속한다면 다가올 도심물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세계적인 지하물류의 선진사례가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 해당 기사는 CLO 통권 70호(2016년 4월호)에 수록된 기사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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