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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서적 부도로 드러난 공급망의 맨얼굴

by 김정현 기자

2017년 04월 07일

복잡하게 뒤엉킨 출판 공급망, 총체적 난맥상

송인서적 반면교사 삼아…출판 물류프로세스 일원화 필요 

서점

글. 김정현 기자

 

송인서적 사태, 우리 출판업계의 현주소

 

“OECD 20위 국가 중 우리나라처럼 낙후된 출판 구조를 가진 나라는 없다.”

 

한국출판인회의의 박효상 위원장의 말이다. 출판 규모만 놓고 본다면 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서도 8대국에 속한다. 하지만 출판 구조는 후진국에 가깝다. 특히 복잡한 유통 및 물류구조는 오래된 종양과도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종양이 곪아터지고 말았다.

 

지난 1월, 도서 도매업계 2위인 송인서적이 부도 사태를 맞았다. 송인서적과 거래하던 국내 출판사와 서점이 2~3천 군데가 넘는 상황에서, 송인서적의 부도가 출판업계 전체로 도미노처럼 번지진 않을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 송인서적과 거래하던 중소 출판사 몇 곳은 이 사태로 직격탄을 맞고 부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표면상으로 송인서적의 부도는 220억 원의 부채를 막지 못한 탓에 발생한 일이다. 그러나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출판업계의 고질병인 ‘유통 및 물류 공급사슬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해 있다. 박 위원장은 “지금까지 우리 출판업계는 문제가 생기면 그 본질은 건드리지 않고 단편적 부분만 해결한 채 묻어뒀다. 이번 송인서적 사태를 계기로 출판업계 공급사슬 전반에 혁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송인서적 부도▲ 송인서적은 지난 1월 3일 영업 중단을 발표했다.

 

도서출판 공급사슬의 맨얼굴

 

국내 도서출판 공급사슬에는 수많은 플레이어가 엮여 있다. 송인서적 사태의 후폭풍이 거셌던 이유도 도매상인 송인서적과 출판사, 배본사(물류업체), 서점이 얼기설기 엮여 있던 탓이다. 그렇다면 국내 도서출판 공급사슬의 구조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출판 가치사슬▲ 출판 유통업 가치사슬 구조

 

우선 책이 만들어지면 ‘인쇄소’에서 ‘출판사’로 책을 보낸다. 출판사를 출발한 책은 곧바로 대형서점으로 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유통·물류업체’를 거쳐 ‘서점’에 도달한다. 최근에는 대형출판사와 대형서점 사이 직거래도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수만 개의 출판사와 서점이 일일이 계약을 맺기 어렵기 때문에 중간에 ‘도매상’이 출판사와 서점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송인서적을 비롯해 북센, 부산한성, 북플러스 등이 이 도매상에 해당한다.

도매상은 다른 말로 ‘총판’이라고도 한다. 이 둘은 거의 같은 말로 쓰이지만 상황에 따라 다르게 쓰이기도 하는데, 이때 총판과 도매상을 구분하는 기준은 출판사가 도매상에 얼마나 큰 권한을 부여하는가이다. 가령 출판사가 한 도매상을 한 지역의 총판으로 지정한다는 것은, 지역 서점이 그 도매상을 거쳐서만 책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반면 일반 도매 체제에서는 서점이 여러 도매상으로부터 같은 책을 공급받을 수 있다.

 

이제 본격적인 배송의 영역이다. 도매상이 직접 배송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배본사’를 통해 온라인 서점, 지역 서점, 대형 서점 등으로 책이 전달된다. 이렇게 물류업체가 책을 물류센터에 보관했다가 각 서점으로 공급하는 것을 배본이라 한다. 대개 출판사와 서점이 직거래를 할 때도 배본사가 물류를 대행한다. 대표적인 중앙 배본사로는 날개(황금, 드림), 고려출판물류, 수레사, 한강물류가 있으며 지역 배본사로는 드림날개, 북뱅크, 협진 등이 있다.

 

이 과정을 거쳐 도서가 온라인 서점 혹은 대형 서점 등의 소매점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출판사부터 서점에 이르기까지 넓고 복잡하게 유통망이 얽혀있는 까닭에, 여러 공급 과정을 거치면서 상당한 유통물류비가 발생하고, 이는 소비자가 책을 구매할 때 적용되는 가격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서적 유통경로▲ 한국의 서적 주요 유통경로(자료=한국출판인회의)

 

무엇이 문제인가?

 

⓵ 비효율적인 유통구조

 

첫 번째 문제는 비효율적인 유통구조에서 기인한다. 박 위원장에 따르면 도서 정가에서 유통이 차지하는 비용은 적게는 40%에서, 많게는 50%에 이른다. 이에 반해 책의 제조원가는 30%이고, 저자 인쇄비는 10%에 불과하다.

 

속칭 ‘도시락배본’은 비효율적인 도서출판의 유통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보통 서점은 여러 도매상과 거래를 맺는다. 때문에 지역 서점이 서울에 있는 각각 다른 도매상에서 책을 주문할 경우, 서울에서 출발한 여러 대의 배송차량이 지역 서점으로 가게 되는 비효율이 발생한다. 가령 지역서점이 책을 단 3권만 주문하더라도, 그 책이 모두 다른 도매상에서 출발한다면, 3대의 배송차량이 같은 서점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도시락배본이라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출판사 대표에 따르면 도매상이 배본사를 이용할 때 ‘이중배본’을 거치는 경우 또한 비일비재하다. 출판→‘배본’→도매→‘배본’→소매 순서로 도서가 이동하기 때문이다. 동대표는 “이런 구조를 없앨 필요가 있다”며 “현재 출판사는 책을 팔아 적자만 안 보면 다행이다. 예전에는 초판만 팔아도 남았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매해 디자인, 편집, 인쇄, 노동에 드는 비용이 올라 도서 제작비용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앞서 언급한 비효율적인 도서 유통구조는 그대로다. 출판사가 책을 팔아도 돈이 안 남고, 도매상과 배본사의 사정은 더 어려워지며, 소비자는 높은 가격에서 형성된 책을 구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서유통 자금 구조

▲ 도서 유통 자금 구조

 

② 불투명한 정보 흐름

 

둘째로 공급사슬 전반의 불투명한 정보 흐름이 문제다. 출판업계는 현금 대신 어음으로 결제하는 것을 선호한다. 서점이 도매상에게, 도매상이 출판사에게 어음으로 결제한다. 자연히 현금이 돌지 않는다. 때문에 출판사 역시 인쇄소에 어음으로 결제를 한다. 지불할 금액이 200만 원 이하의 소액이 아닐 경우 대부분은 이렇게 어음을 통한 결제가 이뤄진다.

 

현재 출판업계는 ‘위탁판매제’로 돌아간다. 즉, 서점이 도매상에게 책을 공급받을 때 돈을 바로 지급하는 게 아니라, 공급받은 책의 판매가 이뤄진 후에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서점은 보통 월 단위 도서 판매량에 따라 도매상과 출판사에게 대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책이 진열된 후 1년이 지나도 돈을 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진열됐다가 파손된 책이 도매상과 출판사에 반품 입고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정보 흐름만 투명하다면 위탁거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출판업계는 도서 판매현황조차 제대로 공유되지 않고 있다. ‘위탁’이라는 조건 자체가 성립 불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시스템으로서는, 책값에서 얼마가 유통비이며, 또 얼마가 제작비인지 파악되지 않는다. 출판사는 발간한 책이 어느 서점에서 얼마나 판매됐는지, 재고는 얼마나 남았는지, 돈은 어디서 어떻게 돌고 도는지 알 길이 없다. 인쇄소, 출판사, 도매, 소매업체가 모두 각자의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급사슬 전반에서 정보가 유기적으로 흐르지 않는 것이다.

 

1)비효율적인 유통구조와 2)불투명한 정보 흐름 이외에도, 각 서점이 고객유치에 열을 올리며 과다 할인 및 사은품 경쟁에 매몰된 탓에, 출판사 역시 ‘팔릴만한 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된 상황도 출판업계의 문제로 꼽힌다. 과도한 경쟁으로 출판업계에 학술, 문예 분야의 고급서적 출간이 위축되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이 소비자가격에서 출판사가 도소매 및 서점에 공급하는 가격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공급률’ 역시 낮아지고 있다.

 

해답은 물류 프로세스의 일원화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2014년 출판사가 정한 도서 가격대로 책을 판매해야 하는 ‘도서정가제’가 개정 시행됐다. 하지만 현재 도서정가제는 낙후된 국내 도서 시장을 변화하는데 실패했다고 평가 받고 있다. 그렇다면 진짜 해결책은 어디에 있을까?

 

출판업계는 ‘공통으로 운용·운영되는 물류 프로세스’가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은다. 한국출판인회의의 박 위원장은 “도서의 제조부터 재고관리, 판매까지 전체 프로세스를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데이터 공용화가 필요하다. 물류시스템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업계의 요구에 따라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에 출판업계의 유통 선진화를 위한 시스템 구축을 반영할 것이라고 지난 2월 16일 밝혔다. 이에 따라 서점 판매시점 정보관리시스템(POS), 국제표준도서번호(ISBN), 서지정보시스템, 오닉스(ONIX) 기반 출판유통정보시스템 등으로 흩어져 활용되고 있는 생산 및 유통시스템의 연계 및 통합이 추진된다.

 

현재는 국립중앙도서관이 ISBN번호를, 출판유통진흥원이 오닉스번호를 관리한다. 이렇게 담당기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출판사는 다른 기관에 이중삼중으로 번호를 신청해왔는데, 이번 문체부의 계획에 따라 이 번호의 관리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계될 전망이다. 이는 출판사가 한 기관에 데이터를 등록하는 것으로 모든 유통정보의 호환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다. 현재(17년 3월 기준) 문체부는 지방 중소규모 서점의 POS시스템 구축을 지원하고 있으며, 점차 전체 도서 유통물류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최성구 출판유통진흥원 팀장은 “교보문고나 예스24와 같은 대형 서점은 각각 SCM 및 판매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각사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1,000여 개가 넘는 지역 서점은 정보화가 미비하며, 제각각 다른 시스템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다”며 “서점온(지역 서점 포털서비스)에 접속하면 약 100여 곳 중소서점의 재고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데, 올해 안으로 이 숫자를 300개 이상까지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점온▲ 각 지역 중소서점의 도서 재고 상황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모든 정보가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연동된다면 재고 및 판매현황에 관한 정보가 출판사부터 서점에 이르기까지 투명하게 흐르게 되어 어음 문제나 공급률 문제나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 기대된다.

 

또한 책에 대한 정보가 한 곳에 모이기 때문에 도서 분야별 트렌드 분석도 가능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최 팀장은 “지금까지 정보를 빙산의 일각만 알 수 있었다면 앞으로는 물속에 잠겨있는 모든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러한 데이터는 출판업계 모두에 이득이 될 것”이라 언급했다.

 

물류 프로세스의 일원화와 더불어 인프라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또한 병행돼야 할 것이다. 한국출판회의 박 위원장은 “출판사가 책을 공동으로 보관할 수 있는 공적 물류센터 설립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공동 물류센터가 설립된다면 물류센터와 배송에 대한 중복투자가 줄 것이며, 배본사가 여러 센터를 반복해서 순회할 필요도 없어진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출판업계의 유통비용이 줄어들어 최종적인 도서 가격 또한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송인서적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한국출판회의 박 위원장의 말을 다시 한 번 빌리자. 그에 따르면 출판은 모든 문화의 근간이다. 출판이 지식산업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국가적 차원에서 발전해야 한다. 선진국 중 책을 홀대하는 나라는 없다. 물적 성장은 지적 성장이 동반될 때 시너지를 발휘한다. 주변의 일본은 이미 국가적 시스템을 갖춘 상황이다. 반면 국내 출판업계의 유통·물류 구조는 성장 기회가 많다. 국가의 관심이 필요한 때다.

 

송인서적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본질이 아니라 단편적인 부분만을 해결했던 과거의 일이 반복된다면 또 다른 송인서적 사태가 발생할 게 불 보듯 뻔하다. 박 위원장의 말대로 출판은 모든 문화의 근간이다. 우리 출판업계를 지키는 게 우리 문화를 지키는 길이다.



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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