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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근로자는 왜 ‘35시간' 근무가 행복하지 않을까

by 송영조 기자

2018년 08월 10일

'워라밸' 위한 근무시간 단축, 취지대로 운영될까

대형마트 직원들 "일과 삶 균형 대신 눈치만 늘어" 지적 나와

 

글. 송영조 기자

 

Idea in Brief

 

7월부터 시행된 ‘52시간 근무제’로 산업계 안팎이 들썩이고 있다. 국민 생활접점에 있는 대형마트도 새롭게 부는 워라밸(Work life balance)의 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롯데마트, 이마트는 선제적으로 폐점시간을 단축하고 나섰다. 특히 이마트는 신세계 그룹 차원에서 일괄 도입한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는데, 노동자들은 오히려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과로를 못 견디고 퇴사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왜일까. 노동자들의 일상을 직접 만났다.

 

7월 1일, 300인 이상 기업에 한해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됐다. 기존에는 법정 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과 휴일근로 16시간을 더해 한 주에 68시간까지만 합법적인 근로시간으로 인정됐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 휴일근로가 인정되지 않는 대신 연장근로 시간에 포함되기 때문에 한 주에 최대 52시간만 일할 수 있다.

 

대형마트 업계에서도 정부의 방침에 따라 새로 바뀌는 제도에 발맞춰 폐점 시간을 변경하거나 근무 시간을 감축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6월부터 특수 점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업장에서 폐점 시간을 기존 24시에서 23시로 앞당겼다. 이마트도 지난 1월부터 일찍이 폐점 시간을 한 시간 앞당겼다.

 

이마트는 폐점 시간을 앞당기는 동시에 신세계 그룹 차원에서 일괄적으로 도입한 주 35시간 근무제를 시행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이유가 큰 방향에서 직원의 워라밸을 위해서”라며 “근무 시간은 줄이고 임금 하락은 없었기에 실질적으로 직원 임금까지 올려준 셈”이라 말한다. 정말일까. 시행 반년에 접어든 지금, 현장에서 발로 뛰는 노동자들의 일상을 직접 만났다.

 

35시간인데 힘든 이유

 

노동자들 사이에선 35시간 근무가 시행된 이후 오히려 업무 강도가 늘고 힘들어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근로시간 대신 ‘쉬는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주장이다. 박선영 이마트 마트노조 대경본부장은 “사측이 근로시간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휴게 시간을 없애버렸다”며 “기존에는 점심시간 외 4시간마다 30분씩 주어지는 무급 휴게 시간이 두 번 있었는데, 주 35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에는 이를 점심시간으로 산입하고 남은 시간은 오직 일만 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두 시간마다 한 번씩 교대하는 캐셔는 또 사정이 다르다. 기존 이들에게는 교대 시간에 30분씩 쉬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화장실에 다녀오고, 업무에 필요한 환전을 하는 등 근무 준비에 쓰이는 시간이라는 게 노측 주장이다. 노측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 이후에 이 시간이 20분으로 줄었다.

 

노측 관계자는 “점포마다 다르지만 근무지가 1층인데 6층에 휴게실이 있는 경우도 있다”며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더라도 오가는 데만 휴게시간을 모두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환전 등 업무준비 시간을 고려하면 10분이라도 제대로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어졌다는 주장이다.

 

기존 근무시간이 8시간에서 7시간으로 줄면서 ‘교대 시간’이 문제가 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오전조 근무자들이 퇴근하는 시간과 오후조 근무자의 저녁 식사시간이 겹쳐서 중간 업무공백이 생겼다는 설명이다. 현장에서 ‘이럴 거면 왜 근로시간을 단축했냐’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박 본부장은 “한 팀이 세 명일 때 기존 오전조와 오후조가 각각 두명과 한 명이었다”며 “회사는 업무 공백을 극복하기 위해 두 명이었던 오픈조 근무자를 한 명으로 줄이고 중간조를 만들어 투입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대형마트는 오픈할 때가 가장 바쁜데 근무자를 한 명으로 줄여버리니 직원들 모두가 오픈조를 기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한 이마트 점포 앞. 영업시간을 안내하는 배너에서 폐점시간을 바꾼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워라밸은 없고, 눈치만 늘어...

 

부산 연재구 소재 이마트 점포 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A씨는 온라인 주문상품 피킹을 담당하고 있다. 이마트몰을 통해 온라인 주문이 들어오면 점포 센터에서 해당 상품을 화물차 기사가 싣고 나가기까지 처리하는 일을 한다.

 

A씨에 따르면 주 35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부터 워라밸은 고사하고 눈치만 늘었다. 그에 따르면 센터에서는 하루 총 세 번의 배송이 이루어지는데, 기존에는 한 차례 배송이 끝나면 직원들과 함께 커피 한 잔 마시며 숨 돌릴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근로시간이 한 시간 줄고 난 뒤부터 ‘짬짬이 휴게 시간’이 사라졌다.

 

이는 단순히 노는 시간이 줄어든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근무지 특성상 배송이 끝나고 난 뒤에도 물량은 계속 들어오는데, 휴게 시간이 없으니 심지어는 동료와 하루 종일 마주치지도 못하는 일이 생기고, 누가 출근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경우도 발생했다고 한다. 근로시간이 줄어들기 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라는 설명이다.

 

A씨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 이후 높은 업무 강도를 이유로 퇴사한 직원들까지 나왔다. 병가를 신청하는 직원들도 하나둘씩 등장했다. A씨는 “동료에게 민폐가 되지는 않을까 잠깐 앉아서 쉬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A씨의 근무지에는 ‘워라밸’이 찾아오기는커녕 남아 있던 ‘인간성’마저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돈다.

 

서울 모처 이마트 점포에서 농산물 진열을 담당하고 있는 B씨의 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근무시간 단축 이후 시간당 노동량이 증가하면서 퇴사하거나 병가를 내는 직원들이 생겼다. 자리를 뜬 직원들의 할당량은 고스란히 기존 근무자에게 돌아갔다. 과거에는 결원이 발생하면 바로바로 인력이 충원되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B씨는 “마트에서 일하는 직원 대부분이 중년 여성인 만큼 이직이 쉽지 않아 불만이 있어도 회사에 쉽게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며 “쉬는 시간은 점심시간 이외에 비공식적으로 30분 정도 있는데, 회사가 언론에 피력하는 것보다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변화, 단기계약직 채용 증가

 

근로시간 단축 이후 또 하나 달라진 것은 1년 이하로 근무하는 단기계약직 ‘스탭’ 채용 증가다. A씨가 근무하는 점포에서 기존 13명의 직원 중 스탭은 한두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지금은 온라인몰의 규모가 늘면서 직원이 25명 이상으로 늘었는데, 그중 절반이 스탭에 해당한다.

 

스탭 채용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업무 지속성에서 나온다. A씨가 보기에 마트의 근무 환경에 적응하고 업무가 일정 수준의 숙련도에 도달하려면 최소 6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단기계약직으로 들어오는 스탭은 길어야 1년이면 신입으로 교체되니, 자연히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기존 근무자들도 교육에 피로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업무의 지속성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 A씨가 전한 기존 근무자들의 입장이다.

 

A씨가 이마트에 바라는 것은 두 가지다. 먼저, 정해진 휴게 시간을 지정해달라는 것. ‘주 35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4시간 근무당 30분씩 주어지던 휴게 시간은 모두 점심시간으로 산입되었다. 따라서 짧더라도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오랫동안 같이 일할 수 있는 직원을 뽑아달라는 것이다.

 

정해진 휴게 시간을 원한다는 근로자의 요구에 대해 이마트 관계자는 “쉬는 시간이 딱딱 정해진 회사가 얼마나 되겠느냐”라며 “정부에서 요구하는 건 주 52시간 근무인데, 우리는 주 35시간이다. 근무 시간은 줄여주고 임금은 더 주는 회사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되겠냐”고 강조했다.

 

단기계약직인 스탭 고용에 대해서 이마트 관계자는 “단기 근무자의 수요가 있기 때문에 채용하는 것”이라며 “등록금이 필요한 학생이나 입대를 몇 달 앞두고 있는 청년의 경우 단기로 근무할 수밖에 없기에 단기 계약직으로라도 일할 의사가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관계자는 단기계약직 고용에 대해 현장 근무자들이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서 “실무진과 논의해보고 개선해야 될 부분이 있으면 고칠 것”이라 덧붙였다.

 

논란의 탄력근무제, 도입 여부는?

 

이마트가 탄력근무제를 도입하려는 것 같다며 우려를 표하는 노동자도 있다. 이마트 노조의 한 관계자는 “몇몇 사업장에서 탄력근무제 시행 관련 설명회를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처음 탄력근무제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워라밸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일이 적을 때는 일찍 퇴근하고, 일이 많은 날에는 연장 근무를 해서 탄력적으로 근무 시간을 운영하면 직원의 자율성도 높아지는 줄 알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노측에 따르면 실상은 달랐다. 같은 관계자는 “탄력근무제를 도입하면 물량이 많아서 연장 근무가 필요한 날 직원들이 연장 수당을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근거로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연장 수당을 주는 대신 정규 근로시간에 포함시켜 기본급만 주고 직원을 더 부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결국 탄력근무제 도입 역시 워라밸 실현이라는 명분으로 사측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꼼수라는 게 노조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탄력근무제 도입 여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확인하고 연락을 주겠다”고 하고 답변하지 않았다.

 

사측과 현장의 온도차

 

7월부터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무제’에 앞서 먼저 근로시간을 단축한 기업들이 있다. 하지만 시행 초창기인 지금,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서는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 노동자의 요구와 사측의 답변 사이에는 괴리가 있었다.

 

이마트 관계자는 “워라밸을 실현하려면 근로시간을 단축해야 하고, 근무시간을 단축하려면 당연히 기존보다 효율적으로 일해야 한다. 회사는 작업 효율화를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도입하고 있다”며 “가령 현장에서 기존 쓰이던 수동 자키 대신 전동 자키를 도입했다. 할인 행사가 있는 날이면 전날 일일이 할인가를 출력해서 라벨을 걸어야 했다면, 지금은 숫자판을 넘겨서 쉽게 가격 표시를 바꿀 수 있도록 근로자의 업무 효율성을 높였다”고 밝혔다.



송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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