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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 플랫폼의 지독한 고민 ‘확장성’

by 엄지용 기자

2018년 08월 14일

보수적인 산업환경과 자사 프로세스, 물류 플랫폼시장 제약요인으로 꼽혀 

이커머스, 금융산업 등 물류 영역에서 뻗어나갈 수 있는 '확장성' 숙제

 

글.엄지용I송영조 기자

 

Idea in Brief

 

국제물류 플랫폼 밸류링크유와 트레드링스. 화물운송 플랫폼 벤디츠, 로지스팟, 고고밴코리아. 대기업의 물류 플랫폼인 ‘이판토스’, ‘헬로’, ‘첼로스퀘어’... 그야말로 플랫폼의 각축전이다. 그런데 물류 플랫폼이 정말 잘 되고 있을까. 업계의 의견은 회의적이다. 무엇보다 플랫폼에서 뛰어 노는 참가자들이 늘어나야 하는데, 그 단계까지 도달하지도 못했다는 의견이다. 대기업 플랫폼은 그나마 자사 물량을 투하하여 뭐라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자기 물량을 자기가 돌린다면 그게 플랫폼으로써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물류 플랫폼의 확장성, 정말 지독한 고민이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물류 플랫폼의 가장 큰 고민은 ‘확장성’이다. 보수적인 물류산업 환경과 물류 플랫폼의 역할에 대한 회의감이 서비스 공급자들이 물류 플랫폼에 참가하는 것을 더디게 만든다. 두바이에 거주하는 한 업계 관계자는 “두바이에서도 해운항공 물류 플랫폼 사업을 하고 있는 인도인들이 많지만 성공적이지 않다”며 “시장 물동량이 100이면 70 이상이 대형화주의 물량이고 회사마다 입맛에 맞는 자사물류와 입찰 프로세스를 돌리니 포워딩(물류 중간상, 브로커)의 역할이 축소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중소기업에게도 플랫폼이 LSP(라이선스 파트너) 신규 발굴, 복수견적 확인 정도의 보조적인 수준으로만 활용될 것 같다”며 “시장원가라는 게 뻔하고, (플랫폼이 나타났다고) 기존에 없던 서비스가 새로 생기거나 진화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 전했다.

 

실제 지금껏 수십 년 동안 오프라인 영역에서 이루어진 물류영업 및 제반 활동이 플랫폼이 등장했다고 한 번에 온라인으로 전환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공론이다. 수출입물류 플랫폼업체 관계자는 “물류업계는 다른 산업군에 비하면 역사가 깊고 보수적이어서 변화에 둔감한 편”이라며 “2~3년 일찍 물류 플랫폼 시장이 형성된 해외에 비하면 국내 물류업계는 아직 기존의 영업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 차주 및 운송주선업체와 화주를 연결해주는 화물운송 플랫폼이라고 환경이 다르진 않다. 화물운송 플랫폼업체 한 관계자는 “국내 시장에 플랫폼이 안착하지 않은 만큼 지금 당장 물류업계의 반응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전했다. 이 관계자는 플랫폼이 바꿀 미래의 가치를 믿고, 안정화시켜나가겠다는 복안이다.

 

대기업이라고 쉬울까?

 

제조, 유통 등 화주 계열사가 존재하는 대기업 물류 플랫폼이라고 확장성을 만드는 게 쉽지는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모회사’ 물량이라도 플랫폼에 돌릴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자신의 물량을 플랫폼으로 돌리는 용도라면 애초에 ‘플랫폼’으로써 의미가 없다. 대기업 플랫폼 입장에서도 외부 공급자의 참여를 적극 유도할 니즈가 있는 것이다.

 

FSK L&S 관계자는 “우리가 SK 계열사이긴 하지만, 자사 물량과 외부 물량 비중은 1:1 정도로 비슷하다”며 “내수시장에는 성장 한계가 있고, 회사가 중국 합작벤처 지분이 있는 만큼 외부 물량을 확보해 글로벌 물류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SDS가 지난달 발표한 물류 플랫폼 ‘첼로스퀘어 3.0’은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고민이 반영된 또 다른 예다. 첼로스퀘어 3.0은 기존 주력했던 B2B 중소 화주가 아닌, B2C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셀러를 생태계에 유입시키는 방향으로 전략을 틀었다. 새롭게 업데이트된 첼로스퀘어 3.0의 서비스 소개서에는 B2B물류를 처리한다는 내용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삼성SDS 관계자는 “첼로스퀘어 3.0이 크로스보더 이커머스에 집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기존 B2B 물량 처리를 안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2018년 6월 12일자로 업데이트된 첼로스퀘어 소개 브로셔. B2B물류와 관련된 내용은 없다. 첫 페이지부터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사업자를 위한 물류 플랫폼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 일각에서는 삼성SDS의 물류플랫폼 첼로스퀘어가 삼성전자의 자체 물량을 처리하는 것 이상의 생태계를 만드는데 실패하여 기존과는 다른 방향에서 생태계를 만들고자 시도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삼성SDS 관계자는 현재 첼로스퀘어의 회원사나 물동 규모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외비’라며 답변하지 않았다.

 

한편, 삼성SDS의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생태계 구축 시도에 대한 회의적인 업계 의견도 있다. 삼성SDS의 물류 자체가 B2B에 최적화되어 있는데,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물류를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느냐는 의문이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SDS는 자체 물량이 FCL(Full Container Lord) 중심인데, 괜한 돈 들이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며 “삼성SDS가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서비스 수행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라 밝혔다. 크로스보더 물류업계 관계자는 “삼성SDS는 서비스 수행 능력이 필요 없다. 서비스 수행을 하는 회사들에 하청을 주는 구조이기 때문”이라며 “삼성 이름으로 영업 따고, 일은 중소기업 시키면 된다. 삼성SDS가 SI사업 하는 것과 같다”고 전했다.

 

참여자가 스스로 날뛰게 만들어야

 

물류 플랫폼의 확장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플랫폼 운영자가 모든 것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참여자가 생산자로서 가치를 제공하도록 만들어야 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플랫폼 기술 및 컨설팅업체 아가도스 박용규 대표는 “네트워크 확장성이 떨어지는 국내 물류업계에서 플랫폼 사업으로 성공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며 “특히 대기업처럼 자사 물량이 없는 물류 플랫폼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플랫폼 참여자들이 스스로 가치를 제공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네트워크 확장에 어려움이 있지만) 포워딩이나 SCM 영역은 글로벌 시장을 타겟으로 하면 작은 기업이라도 충분히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박 대표에 따르면 플랫폼은 크게 ‘놀이공원형’과 ‘경기장형’으로 나눌 수 있다. 놀이동산형 플랫폼이란 플랫폼 운영자가 핵심 서비스를 포함해 부가서비스까지 함께 제공하는 개념이다. 플랫폼 참여자는 서비스 이용료만 지불하면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참여자들이 스스로 창출하는 가치는 없다. 참여자의 역할은 고객, 소비자에 한정된다.

 

반면, ‘경기장형’ 플랫폼은 운영자가 플랫폼 참가자들이 모일 수 있는 ‘장’을 열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드는 데만 집중한다. 참여자는 단순한 소비자 역할을 넘어서 스스로 부가서비스를 만들어 플랫폼에 살을 붙인다. 결과적으로 참여자가 다른 참가자들을 플랫폼 안으로 불러오는 역할까지 자처하게 되는 셈이다. 플랫폼 참여자는 고객이기도 하지만, 플랫폼 생태계를 확장하는 데 일조하는 생산자가 된다.

 

박 대표는 “많은 플랫폼이 놀이동산형 플랫폼을 지향하면서 모든 서비스를 운영사 혼자 다 짊어지려 한다”며 “회사 혼자서 플랫폼을 완성하려면 투자비용과 인력이 많이 필요해 비효율적이고 네트워크 확장에도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자본력이 강한 기업은 수많은 개발자를 플랫폼 사업에 투입시켜 시장을 선점하려고 하지만 애초에 이런 접근 방식은 플랫폼 비즈니스에 맞지 않는다”며 “서비스나우가 혁신기업으로 평가받은 이유는 플랫폼 참가자가 중심이 되는 생태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라 말했다.

플랫폼 자체의 확장? 거버넌스?

 

플랫폼에 파트너들을 유입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플랫폼 자체가 ‘확장성’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박 대표는 “4차 산업혁명의 대표적인 특징이 산업 간 영역 붕괴, 즉 인더스트리 파괴”라며 “물류 플랫폼이라고 꼭 물류 서비스 제공에 매몰될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물류 플랫폼이니까 물류만 하면 된다는 생각 자체가 격변하는 산업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가 바라보는 물류는 모든 산업과 연결되는 기반산업이다. 때문에 물류를 통해서 ‘이커머스’, ‘금융’과 같이 물류가 아닌 분야의 혁신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박 대표는 “플랫폼 참가자들이 물류 프로세스 처리 수요에 따라 플랫폼에 모이는 것은 시작일 뿐”이라며 “물류 외에 부가서비스를 통해 참여자가 필요로 하는 또 다른 가치를 제공한다면, 더 많은 플랫폼 참여자를 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물류 플랫폼의 성공을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대상선 대외협력실 관계자는 “특정 회사가 운영하는 플랫폼 사업에 해당 기업과 동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타업체가 참여하기엔 제약이 크다”며 “플랫폼이 애초에 취지대로 운영되려면 참여기관과 플랫폼 운영상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등의 행위가 선결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현대상선이 자체 물류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은 없지만, 고객 편의 제공 측면에서 고객사가 물류 플랫폼 참여를 요청한다면 전향적으로 참가를 검토하고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엄지용 기자

흐름과 문화를 고민합니다. [기사제보= press@clomag.co.kr] (큐레이션 블로그 : 물류로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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