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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선택한 서로 다른 물류의 길

by 송영조 기자

2018년 09월 29일

사회로 진출하는 물류 전공자, 삼인삼색 서로 다른 '물류'

실무와 이상의 차이? '물류초년병'들이 말하는 물류 현장

 

글. 송영조 기자

 

Idea in Brief

 

오래전부터 많은 대학생들의 난제였던 취업은 오늘날 가히 ‘전쟁’이라고 불러도 과하지 않을 만큼 취준생 사이에서 뜨거운 화젯거리다. 물류 전공생도 입장은 비슷하다. 물류를 전공하고 미디어에서 글을 쓰고 있는 기자처럼 과감히 ‘다른 길’을 선택한 사례도 있으나, 대개는 ‘본업’인 물류계열 회사에 취직해 경력을 시작한다. 하지만 같은 물류 계열이라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회사의 물류의 ‘결’은 조금씩 다르다. 이제 막 사회로 발을 내딛기 시작한 물류학과 출신 업계 새내기들에게 일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물류는 어디에든 있다

 

기업이 더 좋은 인력을 뽑기 위해 고민하듯, 구직자는 더 좋은 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고민한다. 물류를 전공하는 이들은 어떤 고민을 거쳐 진로를 결정할까. 물류를 전공했지만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여럿 사회초년병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이 선택한 회사가 내세우는 물류의 모습은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해상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선사를, 또 다른 누군가는 무역업을 영위하는 상사를 선택했다.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제조회사에 취업한 이도 존재하는 반면, 전문직인 관세사를 준비하고 있는 이도 있다. 대표적인 고객 접점 물류인 택배회사에 취업한 이도 있다. 물류는 어디에든 있었다.

 

다른 길을 선택한 이유

 

지난해부터 한 외국계 선사의 VIP 고객 전담 영업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A. 그는 물류를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운업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전공심화 과정을 통해 해상 물류에 대해 심층적으로 배우면서, 글로벌 선두업체로 인정받는 기업은 다른 회사들과 어떻게 다른지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는 졸업 후 진로를 묻는 교수님의 질문에 괜한 오기가 생겼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해운업계를 선도하는 선사에 취업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은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이 되었다. A는 입사한 뒤에 예전에 몰랐던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을 그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해왔다는 것을 말이다.

 

B는 예전부터 막연하게 비즈니스맨을 꿈꿔왔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5년 간 거주하면서 전 세계를 다니며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지인들에게 동경심을 품었다. 이 경험은 대학에 입학할 때 물류 전공을 선택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6개월 전 석유화학 무역과 마케팅을 하는 대형 상사에 입사해서, 영업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C는 물류회사에서 일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전문직인 관세사를 준비하고 있다. 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D 역시 전공과의 적합성을 살려 제조회사 입사를 결정했다. E는 이커머스 시장의 급격한 성장을 지켜보면서 택배 시장에서 잠재력을 봤다. 그는 6개월 전 한 국내 대형 택배사의 전략기획팀에 입사했다. 조금씩 모양은 다르지만 어디에든 물류는 있다.

 

준비과정의 핵심에는 ‘실무’가

 

기자가 만난 많은 이들이 직무 선택에 중요한 계기가 된 요소로 인턴십을 꼽았다. 그들은 인턴십을 통해 기업 실무를 경험하고, 원래 생각했던 직무에 확신을 갖기도, 직무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기도, 전혀 다른 직무를 선택하기도 했다. 인턴십은 그들에게 자격증과 학점, 어학성적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경험을 선사해줬다.

 

A의 사정, 세상을 보게 된 이유

 

A는 졸업 당시 평균 수준의 학점과 어학 성적을 가지고 있었다. 별도의 물류 자격증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인턴십 경험이 입사 결정에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본다. A는 학부 시절 1년 휴학 후 해외에서 실무를 경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아보다가 한국통합물류협회에서 시행하는 해외 물류인턴십에 지원했다. 현지에 있는 국내 대형 선사의 유럽법인 실무진과의 화상 면접 과정을 거쳐 독일 함부르크에서 정부 장학생 자격으로 인턴십을 하게 되었다.

 

인턴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그는 컨테이너 운영 관리를 담당했다. 본사에서 보내온 운임 데이터를 현지에서 파악한 자료와 비교 및 대조하는 작업을 했다. 회사의 영업 상황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는 물류 시황에 대한 트렌드를 익히는 데 도움을 줬고, 인턴임에도 수박 겉핥기 식 보조 업무가 아닌 실무에 깊이 관여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한다.

 

A는 5개월의 인턴 생활이 끝난 후에도 독일에서 계속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함부르크에 지사를 두고 있는 한국 포워딩 회사를 검색해 무작정 이력서를 보냈다. 세 곳의 기업에서 연락이 왔고, 면접을 봤다. 하지만 언어가 문제였다. 유창한 영어 실력을 보유한 A였지만, 독일어가 부족하다는 이유 때문에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반 년 간 함부르크에 머무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해외 인턴십 경험은 스스로에게 자극이 되었고 도전정신을 고취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A는 해외인턴 경험을 바탕으로 펼친 스토리텔링이 면접관들의 공감을 샀다고 본다. 서류상 적혀 있는 절대적 수치를 강조하기보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느낀 세상을 이야기했다. 그는 실무진에게 자신의 진정성이 전달됐다는 확신을 받았다. A는 이렇게 전했다.

 

“취업준비를 할 때도 그랬지만, 현재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도 과거의 인턴 경험이 고객과의 관계를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곤 해요.”

 

B의 사정, ‘영업’을 선택하기까지

 

현재 회사에서 영업 직무를 맡고 있는 B 또한 두 번의 인턴십을 경험했다. 한 번은 중소 유통사에서 소상공인의 제품을 찾아 유통채널을 직접 만들어봤다. 또 다른 한 번은 국내 한 컨테이너 선사에서 해운 실무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인턴십은 자신에게 잘 맞는 직무를 찾는 과정이었다. 대학생 신분으로 일하는 인턴십인만큼 실무를 익히기에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지만, 물류산업 전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그는 인턴십 과정에서 현재 직무와 같은 영업을 맡았다. 하지만, 자신의 적성과는 잘 맞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회사에서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되려면 첫 관문으로 영업을 배워야 한다는 걸 인턴십을 통해 깨달았다. B는 이렇게 말했다.

 

“거액이 오가는 거래의 최전선에서는 타인을 설득하고 돌발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협상력이 중요해요. 이에 대한 학습이 되어있어야만 향후 관리자가 되더라도 현업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고, 보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습니다.”

 

C의 사정, 새로운 선택의 계기로

 

인턴십 경험으로 진로를 180도 바꾼 이들도 있다. 국내 대형 종합물류기업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다가 적성에 안 맞는다는 것을 깨닫고 관세사를 준비하고 있는 C의 이야기다. 그는 인턴십을 통해 성과와 관계없이 주어진 일을 처리하고 보수를 받는 것에 염증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일하는 만큼 성과가 따라오는 일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오랜 기간 타성에 젖지 않고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C에게는 결혼생활과 육아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열심히 공부해 어렵게 취직해도 결혼 이후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하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때 전문직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사기업에 다니는 여성들과 달리 전문직에 종사하는 부모님의 지인들이 자율적으로 근무 일정을 조정하는 모습이 보였어요. 이들은 일정 기간 경력이 단절되더라도 비교적 쉽게 재취업을 하더라고요.”

 

C는 전공을 살리면서도 결혼생활과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전문직으로 진로를 정했다. 그리고 2년 전부터 본인의 전공인 물류와 관련이 있는 전문직인 관세사 공부를 하고 있다. 그가 관세사로 진로를 결정한 이유는 한국의 경제 환경과 맞물린다. 우리나라는 물적 자원이 부족해 무역으로 먹고 살 수 밖에 없고, 무역량이 증가하면 관세사의 역할은 자연히 따라오기에 일거리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게 그가 관세사를 선택한 배경이다.

 

C는 향후 남북관계가 호전돼 중국, 러시아와 육로로 교류할 수 있는 날이 오면 관세사의 비전은 더욱 밝아질 것이라고 본다. 그는 평생의 업(業)을 갖기 위해 필요한 최소 2년 이상의 준비 기간이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실무와 이상의 차이

 

학생들이 실제 취업을 하고 만난 현장에도 차이가 있었다. 실제 생각했던 것과 큰 차이가 없는 근무환경에 만족하는 이도 있는 반면, 현장과 이상의 괴리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도 있었다.

 

A는 외국계 회사에 다니고 있는 만큼 수평적인 의사결정과 복지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고 고백한다. 그는 실제로 데이터와 사실에 근거한 주장이라면 직급과 상관없이 누구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환경에 놀랐다. 이메일이나 회의 등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영어로 이루어지는 만큼 문화 자체가 국내 기업에 비해 수평적인 것도 있지만, 본사가 소재한 유럽의 사내문화가 전반적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본인의 의견이 결코 무시되거나 가볍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존중 문화는 기대했던 것만큼 만족스럽다는 설명이다.

 

한편, A는 회사가 변화에 대한 빠른 적응을 요구하면서도 국내 대기업처럼 체계적인 교육 과정이 없는 부분이 아쉽다고 한다. 때문에 업무에 익숙해지기까지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한다. A의 회사에서는 내부 프로세스에 대한 변화 도입이 결정되면 그 순간부터 직원들이 같은 업무를 어제와 다른 방식으로 수행하는 게 자연스럽다. 이를 스스로 익히고 적응해나가야 하는 점이 다소 힘에 부칠 때가 있다고 한다. 특히 신입이나 경력직으로 입사하는 경우 이런 점이 더 높은 문턱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B는 취직하기 이전에는 열심히 공부해 입사하기만 하면 세계를 두루 다니며 비즈니스를 성사해내는 멋진 상사맨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한다. 높은 학업성적과 어학 성적, 인턴 경험까지 있는 그는 한껏 기대를 품고 당차게 입사했다.

 

하지만 현장의 현실은 차가웠다. 이론과 실무가 크게 다르다는 점을 깨달았다. B는 “이론에서는 ‘정통’을 가르치지만, 실무에서는 회사마다 의례적으로 오랜 기간 답습해온 고유한 영업 방식이 있었다”며 “사업마다, 시장마다 그 업무 프로세스는 다 달라서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학부 4년 동안 학습했던 물류 이론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는 “물류와 무역에 대한 사전 학습 없이 입사한 동기들에 비하면 업무 이해도가 높고 적응 속도가 빠른 편”이라 설명했다.

 

공통 재능 ‘어학’, 연결의 가치

 

식상할지도 모르지만, 인터뷰에 응한 다수의 물류업계 새내기들은 물류업계에서 일하려면 ‘어학 능력’만큼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정 회사 혼자서 서비스를 완성시키지 못하고 다양한 글로벌 파트너와 협업해야 하는 물류업의 특성상 어학은 ‘연결의 가치’를 만드는 가장 기초적인 역량이 된다.

 

A는 “어느 진로를 택하든 영어 소통 능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본다”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단순히 일할 때뿐만이 아니라, 승진할 때 영어 실력이 중요한 판단 척도가 되는 것을 종종 봤다”고 말한다. 당장 영어를 쓸 일이 없더라도, 영어 실력을 갖추고 있을 때 보다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A는 말한다.

 

B 또한 영어와 중국어의 감을 잃지 않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어렸을 때 5년이라는 시간을 중국에서 보냈지만, 특히 ‘말하기’는 지속적으로 쓰지 않으면 실력이 퇴화한다는 것을 통감했다. 그는 “전 세계의 고객과 소통하기 위해 언어 역량은 필수라고 생각한다”면서 최근 다시 스피킹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다양한 경험’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A는 휴학을 하더라도 인턴십을 했고, 학교를 다니는 와중에도 각종 물류 포럼과 세미나에 개인 자격으로 참가해 업계의 트렌드를 익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당시의 노력은 지금 와서 빛을 발하고 있다. “관심 있는 분야라면 기회가 되는 어떤 것이든 가리지 않고 다 해봤으면 좋겠다”고 A는 전했다.

 

A는 국내에서만 머물 것이 아니라면 해외 경험도 한 번쯤 해보라고 조언한다. 파리에서 6개월간 교환학생으로 체류했던 그는 “해외 체류 경험은 그 자체만으로도 비즈니스에서 현지인과의 자연스러운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프랑스 사람들과 일할 때 파리에서의 교환학생 경험만 이야기해도 금방 심리적 거리가 좁혀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그뿐 아니라 한국과는 다른 외국인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편견 없이 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자산”이라 밝혔다.

 

물류 초년병들과의 인터뷰가 끝나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물류는 어디에든 있다. 하지만 그 물류는 혼자서 만들지는 못한다. 이런 생각이 비단 오랜 업계 경력을 가진 전문가들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송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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