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문제는 스피드! 물류 스타트업의 속도, ‘파괴’와 ‘승률’에 관한 이야기

by 이종훈

2020년 01월 29일

글. 이종훈 롯데액셀러레이터 투자본부장

 

▲ 1998년작 <고질라> 포스터

 

<Size Does Matter>

 

1998년 고질라가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되어 나왔을 때의 포스터가 생각납니다. ‘Size does matter.’ 번역하자면, ‘큰 게 최고야!’라는 의미의 영화 포스터로 고질라의 어마어마한 크기가 모든 것을 압도 할 것이라는 스포일러 아닌 스포일러를 포스터에 문구로 사용했습니다. 어쩌면 20세기말인 1998년까지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덩치 큰 것이 강한 것’이라는 사실이 일반적인 명제로 통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추억해봅니다. 단 현재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덩치 큰 녀석들을 빠르게 해체(파괴)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작은 녀석들. 스타트업의 속도, ‘파괴’와 ‘승률’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최근 10여 년간 물류업계를 포함한 많은 산업 분야에서 ICT, 모바일, 유비쿼터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기술 발전에 힘입어 다양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Paradigm Shift)의 강도가 클수록 스타트업에게는 진정한 기회의 때가 왔다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한국 시장에서의 신유통 전쟁의 경쟁 구도가 오랫동안 전통적 강자로 군림해 왔던 롯데-신세계 구도가 아닌 네이버-쿠팡 구도로 바뀐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유행하는 표현으로 스타트업을 통한 전통 대기업 사업군의 언번들링(Unbundling)이라고 합니다. 현재 각 산업영역들의 흐름을 ‘언번들링의 시대’라고 정의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신흥 기업들이 등장해 기존 기업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빠른 속도로 대체해 나가고 있습니다.

 

‘속도’가 ‘해체(파괴)’를 만들다

 

2015년 6월 18일 HBR(Harvard Business Review)에 ‘Why Startups are More Successful than Ever at Unbundling Incumbents’라는 제목의 기고가 실렸습니다.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지금 스타트업들이 기존기업을 성공적으로 해체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 내용을 읽어보면 ‘지금은 스타트업이 기존 기업을 언번들링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 이유로 기존 기업들이 가지는 장점들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인데, 특히 그 중 규모(Scale)가 가지는 의미가 예전과 다르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새로운 기업(스타트업)을 시작하는 것이 전례 없이 가볍고 쉬워진 요즘입니다. 그 배경에는 오픈소스(Open Source), 온디맨드(On-demand), 클라우드 서비스(Cloud service) 등이 사회경제 전반에 걸쳐 활용되고 있고, 이를 통해 제조, 물류, 홍보와 같은 중요한 자원(Resource)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전통 기업들과 같이 자체 보유한 자원을 활용할 경우 과도한 비용 및 운영상 관성으로 인하여 소비자의 요구에 보다 기민하게 움직이기 어려운 처지가 됩니다. 대응 속도는 물론 제품과 서비스 가격에 있어서도 쉽게 조절하기 어렵습니다. 즉, 주요 자산을 갖추고 있다는 핵심역량이 오히려 빠른 대응에 방해물이 되는 역설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류산업에서도 이러한 언번들링이 한창입니다. CB인사이츠의 2016년 6월 28일자 ‘물류의 와해: 페덱스와 UPS를 분해하고 있는 스타트업들(Disrupting Logistics: The Startups That Are Unbundling FedEx & UPS)’이라는 글을 보면, 최근 물류산업에서도 스타트업들의 역할이 급격하게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신기술과 온디맨드 개념의 확대가 있습니다. 신생기업이 기존 기업보다 더 저렴하고, 유연하며, 중간 중간의 걸림이나 단절이 없는 서비스가 가능해진 것이지요.

▲ FedEx를 언번들링 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출처: CB인사이츠)

 

‘운동에너지 공식’으로 본 스타트업과 속도의 중요성

 

그동안 물류스타트업들이 괄목할만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ICT 및 데이터 분석 기술을 활용한 기술의 진보, 그리고 시장의 투명성 확보가 꼽힙니다. 대표적 사례로 기존의 중개 사업을 와해하고, 물류가 필요한 기업들의 선호도 및 예산에 맞는 파트너를 손쉽게 매칭해주는 마켓플레이스 사례가 있습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과 강점은, ‘물류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지만, 관련된 물리적 자산과 인프라는 소유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과거의 주요 경쟁 무기였던 물리적 자산과 인프라는 이제 속도에 있어서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버린 형국입니다.

 

즉 스케일은 죽었고, 이제는 속도가 빨라야 한다는 것이 더 지배적인 명제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큰 게 최고라고요? 다소 뜬금없다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중학교 교육과정에 나오는 운동에너지 공식을 통해 이를 보다 과학적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 운동에너지 = 1/2 * 질량(m) * 속도(v)의 제곱

 

움직이는 물리적 존재(기업이라고 합시다)의 에너지는 질량에 비례하며, 움직이는 속도의 제곱에 비례합니다. 짧게는 20년 전, 길게는 100년 전 산업 환경을 보겠습니다. 당시에는 어떤 사업 분야이던 간에 완성된 새 제품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절대적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습니다. 반면 첫 번째 제품의 탄생 기간에 비하면 두 번째 유사한 제품의 탄생 기간은 비교적 짧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기업들마다의 속도 V의 차이는 선발주자가 5년(속도 V1=1), 후발주자가 이후 1년을 더한 6년(속도 V2=5/6)이 걸린다고 합시다. 만약 두 회사의 크기가 똑같이 1이라고 했을 때 양 회사의 에너지는 1: 25/36(또는 1:0.7), 약 30% 정도의 차이가 나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적지 않은 차이지만, 만약 후발주자가 대형 기업으로 그 규모(질량)이 1.3배 이상이면 선발주자의 에너지를 쉽게 넘어설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 과거 산업 환경에서는 빠른 선발주자를 거대한 규모로 압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산업 환경을 고려해 봅시다. 온디맨드 환경 등의 영향으로 아주 빠르게 움직이는 스타트업들은 속도가 주는 에너지가 제곱으로 강해집니다. 때문에 후발주자가 가지는 규모의 중요성이 점점 약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신제품을 처음 내어 놓는 속도와도 관련 있겠지만, 하루에도 여러 번 시장 환경 및 고객요청 등에 대응해야 하는 속도를 고려하면 오히려 가속도를 방해하는 규모(질량)는 점점 더 입지가 좁아 질 수밖에 없습니다.

 

속도는 ‘확률’도 극복한다

 

급속도로 빨라진 산업적 변화는 사업의 성공 확률에 대한 관점까지 변화시켰습니다. 여러분은 사업 성공에 필요한 요소 가운데 ‘실력’, 그리고 ‘운’ 중 어떤 것이 더 크게 작용 한다고 생각 하시나요? 실제 성공한 기업가들 중 ‘운’이라고 대답한 경우가 많은 것은 이들이 겸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시다. 이번에도 간단한 수학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사업, 그리고 수학에 대해서 잘 모르신다고 해도(사실 정답을 아는 사람은 없겠지만요) 다음의 공식에 대부분 동의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업의 성공 = 실력 X 운」

 

그렇다면 20~100년 전에 인간이 갖출 수 있는 실력과 운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먼저 운. 여러분은 지금 살고 있는 내 자신이 100년 전에 살았던 조상님보다 가위 바위 보를 더 잘할 것이라 생각 하나요? 결코 아니겠죠. 여기서 운은 현재나, 100년 전이나, 선사시대나 똑같은 무작위적 승률 차원의 운을 뜻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때의 운(승률)은 변함이 없이, 모두에게 공평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개인(조직)이 갖출 수 있는 실력, 그리고 이를 갖추는 데 필요한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지금의 우리는 100년 전, 아니 20여 년 전과 완전히 다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나 아이디어를 갖추고 나면, 이를 과거에 비해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적절한 수준의 기능은 갖춘 사업 아이템(실력)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실력 간의 차이 또한 상당히 줄어들었습니다. 실제로 기술집약적 제품인 스마트폰을, 브랜드 로고와 고유 디자인을 배제한 채 일반적인 성능의 차이만으로 서로 구별해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를 ‘실력의 평준화 시대’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처럼 초스피드로 실력을 갖출 수 있는 실력의 평준화 시대에서는 더 많은 운을 시험해 볼 수 있습니다. 100년 전 같았으면 평생 3~4번 밖에 시도해볼 수 없었던 10년짜리 프로젝트를 지금은 3년에 한 번 꼴로 시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매번 같은 운(성공률)이 주어진다고 가정 한다면, 일생에 걸쳐 성공할 확률 또한 몇 배는 더 높아졌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때문에 속도는 지금도 매우 중요하고, 스타트업 성공에 있어 앞으로 더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물론 특정 아이디어, 아이템에 대한 집념을 빨리 포기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시장변화가 빠르게 이뤄지는 시대에서는 확률적으로, 기민하게 변화를 반영해내는 새로운 시도들이 늘어날수록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결국 실행 속도를 바탕으로 신속하게 다양한 시도를 가 경쟁사의 규모를 이기고, 성공에 대한 확률을 극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종훈

국민대학교 글로벌창업벤처대학원에서 전임교수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롯데액셀러레이터의 투자본부장을 맡고 있다. 기술경영학(MOT) 박사를 취득하였으며, 벤처기업 CFO로도 활동했다. 벤처기업 투자활동과 더불어 스타트업의 혁신, 액셀러레이팅, 벤처투자에 대한 연구 및 기고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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