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설창민의 공급망뒤집기]혁신은 OO부터...오래된 '현장' 개념 바꿔야

by 설창민

2017년 03월 05일

현장, 공장, 사무직의 기묘한 관계

 

글. 설창민 SCM 칼럼니스트

 

Idea in Brief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을 한다. 여기서 말하는 현장은 어디인가? 많은 사람들은 기계가 시끄럽게 돌아가고 그 앞에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가 서있는 ‘공장’을 떠올릴 것이다. 물론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과거 경영의 혁신은 대개 공장의 노동자들의 작업 표준화가 중심이 돼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 개념은 바뀌어야 한다. 공장은 현장의 부분집합이지, 일대일로 대응하는 관계는 아니다. 공급망 전체의 관점에서 공장은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공장만이 현장이 아니라, 일이 이뤄지는 모든 곳이 바로 현장이다. 주문부터 제조, 유통까지 한몸처럼 움직이는 인더스트리4.0 시대의 해법은 공장이 아니라 현장에 있다.

 

현장 VS 사무실?

 

웹툰 <미생>(작가 윤태호)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드라마 4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한석률: 사무실이 현장이라니, 말장난이 지나치군요? 현장이 뭔지나 아십니까? 현장 노동자들은 사무실의 끄적임 몇 번으로 쉽게 잘려나가는, 구조조정 최전선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장그래: 한석률씨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현장을 강조했습니다. 아니, 현장만을 강조했죠.(중략) 한석률씨가 말하는 현장에서 생산된 모든 제품들은 ‘왜 만들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거친 이후에야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물건들은 사무실을 거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생산직과 사무직, 누가 더 고되고 힘든가? 금융업이나 서비스업 정도를 제외하면 모든 분야에서 앞으로도 영원히 멈추지 않을 논쟁이다. 그런데 장그래와 한석률의 대화를 다시 살펴보자. 둘은 사무실이 현장인지 아닌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한석률의 말대로 현장과 사무실은 완전히 구별되는 곳일까?

 

그렇지 않다. 장그래의 말대로 현장에서 생산하는 모든 제품은 왜 만들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즉 ‘프로세스’를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공장 작업지시, 생산지시 등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하라는 지시가 없었다면 해당 제품 역시 만들어지지 않는다. 업무 프로세스에 대한 지시가 있고 난 뒤에야 한석률이 말하는 ‘현장’의 노동자가 일을 시작한다. 그들이 만약 사전 과업지시 없이 일을 시작했다면 그것은 회사 정책을 무시한 임의생산이 되며, 반대로 지시대로 일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파업이 된다.

 

현장에 관한 스테레오타입

 

머릿속에 ‘현장’이라는 공간을 떠올려보자. 대부분 ‘공사현장’, ‘플랜트’, ‘기계소리와 함께 바쁘게 돌아가는 공장’,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TV광고와 드라마가 이런 이미지를 만들고 각인시켜왔다. 드라마의 재벌 2세 주인공이 정장 차림으로 공장에서 가서 하는 말을 기억해보자. 현장이 살아나니 한국 경제도 살아나는군요. 어쩌구저쩌구.

 

우리에게는 스테레오타입(고정관념)화된 현장의 이미지가 있다. 보통 ‘현장에 답이 있다’고 말할 때의 현장은 ‘공장’을 의미한다. 물론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다. 경영 관리와 경영 혁신의 시작은 과학적 관리나 헨리 포드의 컨베이어 시스템에서 나왔다니 말이다. 이 혁신의 시작은 ‘공장’ 노동자의 작업 표준화가 중심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서 탄생한 3正(정품, 정위치, 정량), 5S(정리(Seiri), 정돈(Seidon), 청소(Seosoh), 청결(Seiketsu)을 습관화(Shitsuke)), 도요타의 TPM(Total Productive Maintenance), GE의 6시그마 등의 관리기법 역시 모두 현장에서 답을 찾은 결과였다. 한국만 해도 외환위기 시절 현장 혁신활동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 역사가 있다. 이때의 현장은 모두 공장과 같은 말로 쓰인다. 때문에 현장을 공장이라고 생각한다 해서 꼭 틀린 것은 아니다.

 

‘현장⊃공장’

 

하지만 ‘현장=공장’은 아니다. 현장 속에 공장이 포함돼 있다. 즉 현장이 큰 개념이고 공장은 그것보단 작은 개념이다. 생각해보자. 만약 영업부서에서 무리한 제품이나 납품을 요구한다면, 혹은 연구소의 자재명세서가 시원치 않다면 어떨까? 구매부서에서 무리하게 단가를 낮추거나, 납품관리로 인해 품질이 낮은 부품을 구매한다면 또 어떨까? 자재부서에서 자재 보관을 잘못해서 자재가 다 썩어버린다면? 이때 ‘영업부서’, ‘연구소’, ‘구매부서’, ‘자재부서’는 모두 우리가 사무실이라 부르는 곳이다. 사무실에서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면 제조현장(공장)이 아무리 노력한다한들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반대로 사무실에서 아무리 많이 팔길 원해도 생산직이 품질 문제, 수율 문제를 일으키거나, 재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납품 시기는 늦어지고 자연히 고객은 떠나게 된다. 물론 과점시장이라면 고객이 불만을 갖더라도 상품이 팔리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불만이 쌓이면 결정적인 순간에 선택을 못 받는 불상사가 생긴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이런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서는 제조현장과 사무실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야 한다.

 

요컨대, 공장만이 현장이 아니다. 제조현장(공장)은 전체 공급망 관리에서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이제 현장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 우리에게 각인된 스테레오타입을 벗겨야 한다. ‘현장=공장’이 아니다. 일이 이뤄지는 모든 곳이 현장이다.

 

다시, 현장에 답이 있다

 

요즘 유행하는 ‘인더스트리 4.0’을 생각해보자. 언뜻 로봇이 생산하는 자동화 생산이 떠오를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 인더스트리 4.0은 ICT기술을 활용해서 공장을 정상적으로 돌리는 데 장애가 되는 요소들을 미래 예측하고 대응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고객의 긴급주문이 발생하면, 미래의 생산계획을 어떻게 바꿔야할지, 자재는 미리 입고 가능한지, 물류 측면에서 차량 확보에 문제는 없는지 등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과정이다. 다만 이러한 과정을 전화가 아니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혹은 미래 예측 시스템을 통해 알아내는 것이 인터스트리 4.0인 것이다.

 

많은 공장은 앞서 언급한 3正, 5S조차도 실현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이런 공장을 가진 회사라면 그 사무실의 환경 역시 안 봐도 뻔하다. 다시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을 생각해보자. 이 말은 어떤 문제의 해답을 공장에서만 찾으라는 게 아니다. 제조현장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과정을 살피고 종합적으로 문제를 도출, 해결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점이 바로 인더스트리 4.0을 포함한 새로운 산업혁명의 핵심이다.

 

기회가 된다면, 이러한 관점에서 <미생>을 다시 보길 바란다. <미생>은 비정규직의 서러움만 이야기하는 드라마는 아니다. 현장에 대한 소름끼칠 정도로 뜻깊은 통찰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드라마이다.



설창민

군 복무 전 우연히 하게 된 창고 알바를 계기로 물류에 입문, 아직 초심을 안 버리고 물류하고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해서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dcscully)를 운영하고 있고, 다양한 실무 경험으로 물류업계 종사자들의 삶과 애환을 독특한 시각과 필체로 써내려가는 것이 삶의 보람.




다음 읽을거리
추천 기사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