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MC.R의 잡썰] 제조 vs 유통, 그 끝에 온디맨드

by 박성의

2018년 03월 18일

제조에서 유통으로, 다시 제조로. 뒤엎이는 헤게모니 싸움

허니버터칩, 스팸, 부대찌개면까지... 뒤엎인 헤게모니를 증명하는 사례들

헤게모니 전환의 원동력 물류, 온디맨드 향해 간다

 

글. 박성의 칼럼니스트

 

Idea in Brief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조와 유통은 치열한 헤게모니 다툼을 해왔다. 생산이 수요를 압도하던 만드는 족족 팔리던 시기, 제조업의 전성기다. 데이터와 채널이 힘을 만들던 시기, 유통은 제조를 향해 구매력을 행사했다. 그리고 모든 산업의 경계가 혼탁해진 4차 산업혁명의 시기. 유통업을 위협하는 새로운 채널들이 속속 등장하고, 제조 역시 유통의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고객의 니즈에 맞춘 생산과, 그에 따른 물류가 필요해진 시대다. 이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

 

유통과 제조의 힘겨루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차 산업혁명과 그 이전은 만들면 팔리는 시기였다. 가내수공업 형태의 제조로 만들어진 제품은 해당 지역에서 소비됐다. 대량생산으로 대표되는 2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제조의 전성기가 찾아왔다. 이어 정보혁명이라 불리는 3차 산업혁명, 그 중에서도 ‘바코드’의 물결로 인해 유통의 전성기가 찾아왔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이 왔다고 한다. 2012년 독일에서 시작된 인더스트리 4.0은 ICT에 기반한 효율적 생산이라는 목표를 향해 경주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제조는 유통과의 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2006년부터 다양한 유통업체에서 근무하며 제조와 유통의 힘겨루기를 직접 목도했다. 이후 한 라스트마일 물류업체에 합류하여 또 다른 산업군인 ‘물류’의 도약을 지켜보기도 했다. 4차 산업혁명이 왔다고 한다. 제조와 유통, 그리고 숨은 강자로 도약한 물류의 헤게모니 싸움은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이어질 것인가.

 

생산자의 전성기가 오기까지

 

2차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유통업이 크게 발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소위 ‘결핍의 시대’다.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대, 수요가 생산을 압도했다. 당시에는 자급자족, 혹은 최소한의 상품을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어 그 지역 내에서 소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만드는 족족 판매된다는 ‘생산=판매’ 공식은 성립됐다. 물류가 크게 발달하기도 어려웠다. 그저 거점에서 거점으로 이동하는 수준이었다. 고객을 예측할 필요도, 생산량을 조절할 필요도, 가격 경쟁을 펼칠 필요도 없이 그저 만들기만 했다.

 

이후 컨베이어 벨트로 대표되는 2차 산업혁명이 찾아왔다. 생산자는 저단가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결핍의 시대는 끝났다. 생산자의 전성기다. 대규모 공장에서 만들어진 생산품을 해당 지역의 구매력만으로 다 소비할 수는 없었다. 원거리 배송 수요가 생기며 ‘물류’가 발전했다. 이어 철도가 정비되고, 우마를 대체한 자동차를 위한 도로망이 촘촘히 깔리기 시작했다.

 

지역 소도시는 물론 더욱 작은 마을까지도 대량 생산 제품이 공급되기 시작했다. 저렴한 가격은 물론 품질 또한 기존 지역내 소규모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어지던 제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생산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던 시대는 조금씩 지나고 더 많은 자본이 더 많은 상품을 만들면서 ‘재고’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2차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대량생산 체계는 지속적으로 고도화 되고 발전을 거듭해 거대 기업이 등장했다. 생산자가 만들어낸 양산품을 일방적으로 소비하던 소비자들도 개인의 기호를 반영한 상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생산자들도 시장, 연령대, 지역별 맞춤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온전한 생산자의 시대에서 소비자의 니즈(needs)가 커지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오프라인 유통업체(이하 유통업체)가 성장했다.

 

바코드의 등장, 뒤집힌 헤게모니

 

3차 산업혁명의 시기와 범위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컴퓨터가 등장한, 그리고 자동화된 설비 시스템이 보급된 시점인 대략 1970년대 이후의 시점을 3차 산업혁명의 시기로 바라볼 수 있다.

 

그 와중 유통과 제조의 헤게모니 싸움에 있어 큰 획을 긋는 사건이 1974년 발생한다. 미국 오하이오주 트로이의 마쉬(Marsh) 슈퍼마켓에서 현재의 바코드(Barcode)가 부착된 리글리사의 쥬시프르트 검이 스캐너를 통해 처음 판매된 순간이다. 이 날 찍힌 바코드의 ‘삐’ 소리가 유통의 혁신을 알리는 소리이자, 유통과 제조업간의 헤게모니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결핍의 시대를 지나, 대량생산의 시대를 거쳐, 유통업의 시대가 시작된 역사적인 순간이다.

바코드의 탄생(자료: smithsonian.com)

 

바코드의 등장을 통해 제조와 유통은 물론 물류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우선 모든 제품에 각 제조사의 라벨이 아닌 국제 표준 바코드가 부착됐다. 제품 박스에도 물류 바코드를 부착하여 제품 검수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생산, 유통의 혁신과 더불어 유통업체에서는 계산대의 정확하고 빠른 계산, POS(Point of Sales)를 통한 판매시점 관리, 재고관리 등의 대변혁으로 보다 다양한 고객 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 됐다.

 

고객카드와 바코드를 통한 POS(Point of Sales)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 정보 및 구매패턴을 기반으로 발주 및 판매 관리를 할 수 있게 됐다. 고객 개개인의 정보뿐 아니라 그 정보를 조합한 성별, 연령대별, 지역별 데이터에 기반한 분석을 통해 고객의 니즈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공급자 중심의 시대에서 유통업이 헤게모니를 가져오게 되는 큰 변화의 시작이다.

 

대형소매점(슈퍼마켓 등)은 한정된 진열공간에서 최대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 잘 팔리는 상품 중심으로 진열하고,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판매하고, 발주하게 되어 자연히 2등과 3등 상품은 점차 밀려나게 됐다. 이는 제조사가 유통업체의 요구에 따른 납품형태로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됐다. 유통업체들은 개별 매장 분석에 그치지 않고 점차 전체 고객의 니즈를 분석하고 매장을 확장해 나갔다. 동시에 대량구매를 통한 구매단가 인하를 통해 매출과 수익을 확대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월마트와 같은 거대 유통기업이 등장하고, 유통업은 제조사와의 힘겨루기에서 더더욱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끝없이 성장하던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제조사가 아닌 또 다른 형태의 유통강자에게 조금씩 지위를 내주기 시작했다. 이커머스 업체다.

 

인터넷으로 새롭게 열리는 세상

 

제조사에서 오프라인 유통업체로 넘어왔던 헤게모니 싸움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제조사와 유통업계의 힘겨루기가 아닌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대결 구도에 접어들었다. 현재도 진행 중인 이 대결은 사실상 중간 지점의 대결로 향해가고 있다. 각자의 영역 대면과 무점포의 대결에서 오프라인은 온라인으로, 온라인은 오프라인으로 각각의 장점을 흡수하고 있다.

 

대형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기존의 자본과 영향력을 바탕으로 온라인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온라인 업체들 또한 오프라인과의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아마존은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으며, 국내 온라인 쇼핑몰들도 편의점, 할인점, 백화점 등 오프라인 유통채널과 제휴를 적극 확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물류업체들은 가장 큰 수혜자가 되었다. 매일매일 쌓여가는 상품 박스, 인터넷 쇼핑이 생겨난 이후로 상승세를 줄곧 이어갔다. 지속적으로 커져만 가는 택배 규모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유통업체 간 헤게모니 싸움의 숨은 승자는 물류업계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타났다.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 되면서 유통업계에 대변화를 불러왔던 바코드의 의미가 조금씩 퇴색되고 있다. 유통업에 헤게모니를 가져오게 했던 바코드의 위엄은 사라지고 오히려 물류가 더욱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가 왔다.

 

다시금 제조가 유통을 엎다

 

온오프라인 유통업체의 대결은 점점 치열해졌다. 최근 몇 해를 뜨겁게 달군 쿠팡발 배송전쟁으로 대표되는 ‘최저가’, ‘배송’, ‘원스탑쇼핑’, 3개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유통업계의 경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 와중 점차 중간과정을 거치지 않는 ‘산지직송’, ‘생산자(제조사) 직배’ 가 확대됐다. 단순 구색이나 그래도 하나 있어야지 하던 제조사 직영몰이 확대되고, 신선상품의 경우 생산자들이 유통업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판매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유통채널이 아닌 포털을 통한 생산자-소비자간 직거래 규모도 급증하고 있다. 유통을 벗어난 제조의 대이주(Exodus)다.

네이버 샵윈도. 포털이 기존유통업체의 채널을 대체하고 있다.

 

과거 생산자들은 별도 판매망을 구축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물리적, 시스템적, 인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유통업체를 통해 상품을 공급하고 판매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고객에게 직접 상품을 소개, 판매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온라인, 모바일, SNS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물리적인 판매망을 구축하지 않고도 판매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SNS를 활용한 판매 예시. 다우기술 SNS Form 소개서 中

 

이는 유통업체와 생산자간의 헤게모니 싸움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점차 생산자가 다시 유통업과의 헤게모니 싸움의 우위에 설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 상황으로도 인기상품의 경우는 공급자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필자가 겪었던 몇 가지 사례를 예로 들어 보겠다.

 

Case1 : 허니버터칩 열풍을 기억하는가

 

한때 전국민이 실물이 존재하는가 의문을 가졌던 허니버터칩 사례는 유통업과 생산자간의 관계도치를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시다. 허니버터칩을 찾아 매장을 헤매는 것은 물론, 허니버터칩 한 봉지를 다른 상품에 묶어 파는 ‘허니버터칩 인질극’이 벌어졌다. 중고시장에서는 허니버터칩을 정상 판매가의 3배에서 20배까지 가격을 높여 책정해 팔기도 했다. 필자도 GS홈쇼핑 근무시절 누군가 구해온 허니버터칩 한 봉지를 10명이 나눠먹고, 심지어 다 먹고 빈 봉지를 누가 가져갈까 가위바위보로 정했던 경험이 있다. 모든 유통업체에서 허니버터칩을 구해오라는 지시가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제품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허니버터칩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유통업체 입장에서 허니버터칩이 아무리 잘 팔린다 하더라도 내가 속한 유통채널에서 판매되지 않으면 수익은 발생하지 않는다. 제조업체인 해태는 허니버터칩이 어디서 팔리건 간에(개인간 거래 제외) 이익을 얻는다. 페이스북과 유투브, 각종 매체, 포탈을 통한 상품 정보의 공유, 개인사용 경험의 공유와 확산을 통한 상품의 판매, 여기에 새로운 국면의 실마리가 일부 존재한다. 굳이 유통업 채널을 통하지 않아도 상품을 알릴 수 있고, 실제 판매로도 쉽게 이어질 수 있는 시스템(결제 시스템, 물류시스템 등)을 통해 생산자는 유통채널이 아닌 다양한 채널을 활용한 판매활동을 할 수 있다.

새로운 유통채널로 부각되기도 한 MCN(자료: 레페리)

 

Case2 : 스팸을 향한 이마트의 러브콜

 

또 다른 예시는 이마트의 스팸 2+1 행사다. 2010년과 2011년 사이에 일어난 일로 기억하는데 이마트에서 CJ의 스팸을 2개 사면 하나를 주는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스팸의 경우 CJ의 핵심 아이템이자 생산, 공급량은 물론 판매가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품이다. 일반적으로 대형마트가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최대 할인 폭은 3개 사면 하나를 더 주는 3+1행사이지만, 큰 규모의 행사 외에는 잘 제공하는 옵션은 아니다.

 

당시 필자는 롯데마트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이마트에서 스팸 2+1 행사가 진행되자 내부에서 즉시 CJ 담당자에게 문의했다. 그 결과 CJ측에서 상품을 공급하여 진행한 행사가 아니라 이마트에서 자체 비용으로 진행한 건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으나 동일한 답변을 들었다. 내용인 즉, 이마트 인스턴트 담당 MD가 이마트 창립기념일 행사에 맞춰 스팸 행사를 진행하려고 약 6개월 간 매월 이마트 판매량의 약 10% 정도를 추가로 발주하여 미리 물량을 준비한 후 해당 물량으로 2+1 행사를 자체 진행한 것이었다.

 

오프라인 할인점의 경우 대부분의 상품을 제조사에서 직접 매입하여 자체적으로 가격을 매겨서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그러나 가격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고객이 압도적으로 좋아하는 상품의 경우 그 관계가 뒤엎이기도 한다. 유통이 아닌 제조사에서 판매가격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유통업체가 그것을 따르지 않는다면 제품 공급을 중단하는 식이다.

 

Case3 : 휴가기간과 라면의 상관관계

 

라면의 절대 강자 농심은 매년 8월 첫 주 휴가절정기에 공장 휴가를 핑계로 최소 일주일에서 10일 치 물량을 미리 주문하라고 유통업체에게 요구한다. 라면이 없는 오프라인 매장을 상상할 수 있나? 그것도 여름휴가 시즌에 말이다. 당연히 유통업체에서는 최대한 물량을 확보해야 하니 제조업체의 요구를 수용하고 발주할 수밖에 없고 온 창고와 하역장은 라면 천지가 된다. 단순히 공급자가 동일한 SKU(Stock Keeping Units)의 상품을 공급한다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겠다. 그러나 자체적으로도 매년 신상품이 출시되고 경쟁사에서 새로운 상품이 출시되어 진열 공간은 점점 더 경쟁이 치열해진다.

 

단적인 예로 농심에서 부대찌개면이 나왔다고 신라면 진열 공간을 줄이고 싶을까. 그건 아니다. 오히려 별도의 공간을 갖고 싶어 할 것이다. 할인점 입장에서는 당연히 더 잘 팔릴만한 상품을 선택해서 발주하여 진열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각종 프로모션에 대한 협상이 오간다. 각자의 이해가 일치하는 수준에서 결정이 되고 진열공간과 납품가, 물량이 정해진다.

 

무한한 노출, 진열 공간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온라인 쇼핑몰은 상황이 다를까. 다르지 않다. 인터넷 쇼핑에서도 상품노출 공간은 부족하며, 모바일 쇼핑이 대세가 된 지금 그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첫 페이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오프라인 유통업체와 유사한 협상이 진행된다. 최대한 좋은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첫 번째 페이지에 노출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첫인상이 중요한 것은 사람뿐 아니라 상품, 매장도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점차 빨라질 것이다. 쇼핑에 대해서 온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상품자체의 판매로 직접적인 이익을 보는 것은 생산자다. 그리고 생산자는 어떤 채널에서 어떤 형태로 판매되든 이익을 취할 수 있다.

 

헤게모니 전환의 원동력 ‘물류’

 

이렇듯 생산자가 전통의 유통채널을 벗어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모바일(인터넷)과 물류라고 할 수 있다. TV를 보면서, 커피를 마시면서 어떤 상품이든 검색하고 손가락으로 구매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내가 원하는 위치에서 원하는 시간(비용을 지불하면)에 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시대 이전에는 정보의 비대칭이 상품 구매에도 존재했다. 수없이 많은 도매업자를 지나서야 내가 직접 가격을 볼 수 있는 소매 시장에 도달했고, 그 상품을 사기 위해서는 직접 매장을 방문해야만 했다.

 

많은 경우 운송도 직접 해야만 했다. 예를 들어 서울에 사는 내가 사고 싶은 세탁기가 50만원인데 부산에서 40만원에 판다고 해도 애초에 부산에서 판매되는 가격은 지인이 알려주지 않으면 알 수도 없을뿐더러, 시간과 왕복 교통비를 생각하면 서울에서 사는 게 훨씬 더 나은 선택이 된다. 그러나 지금은 매장에 갈 필요도 없이, 실은 각 쇼핑몰을 돌아다닐 필요도 없이, 포털이나 가격비교앱에서 배송비를 포함한 최저가를 확인하고 구매할 수 있다. 이제는 부산, 제주도의 상품뿐 아니라 미국에서 TV를, 프랑스에서 분유를, 독일에서 화장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최저가 상품은 사이트 내에 굳이 좋은 자리에 노출하지 않아도 순식간에 매진이 된다. 다소 신뢰도가 낮은 쇼핑사이트라 할지라도 최저가의 위력은 대단하며, 오랜 배송시간이 소요되는 해외직구도 저렴한 가격으로 인해 충분히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있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이 과정에서 개별 유통채널이 생산자의 우위에 서는 것이 조금씩 어려워지고 있다. 물론 유통업계도 PB, 제조사 독점 공급, 콜라보 상품 개발 등 나름의 변화를 지속하고 있지만, 과거 영광을 지속하기는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크게 웃는 자는 사실 생산자도, 유통업체도 아닌 물류업체라는 사실은 수치로도 드러나지만 실제 영향력에서도 그러하다. “오늘 내가 구매한 삼각김밥은 지난밤 누군가의 밤샘이다”라는 말처럼 내가 살아가는 모든 곳에 공기 다음으로 물류가 있다고 본다. 유통업체에 근무하면서 지속적으로 깨닫는 부분은 유통(流通)보다 물류(物流)가 앞에 있다는 것이다. 물류가 있고 유통이 있다는 확신이 점점 커지고 있다.

 

유통업체에서는 지속적으로 O2O를 확대해서 고객점접을 확대하고 이어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세상은 점차 ‘온디맨드(On-demand)’ 중심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개개인의 요구에 맞춘 제조가 발생하고, 마찬가지로 그에 따른 파편화된 물류가 수반된다. 오후 5시까지 주문하면 내일 배송해준다는 일반적인 배송이 아니라 내가 여행가는 에펠탑 앞에 그날 가져다주는 배송이 온디맨드 물류의 대표적인 형태가 될 것이다.

 

가령 생산자 → 판매채널(유통업체 등) → 물류 → 소비자 형태의 현재 구조에서 물류기업이 창고에 보유한 다양한 상품을 바탕으로 판매와 배송을 같이 진행하는 형태의 운영을 도모할 수 있다. 물론 생산자가 생산·판매를 하고 물류를 거쳐 소비자에 전달되는 과정도 있지만, 물류기업이 판매까지 진행하는 형태도 가능하다. 대표적으로 아마존의 풀필먼트 서비스(Fulfillment By Amazon)는 유통업체의 탈을 쓴 물류기업 아마존이 실제로는 판매까지 하는 형태로 보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최근 여러 물류업계 관계자 분들과 만날 기회가 생겨서 그분들의 말씀을 들어봤다. 지금까지 크게 변하지 않는 상태로 물류업계는 유지되어 왔으나, 큰 변화 직전에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점차 물류는 고객의 니즈에 맞춰 변화하는 새로운 형태가 될 것이다.



박성의

필립 아부지, 콜라먹고 취하는자, 츤츤이, 라면성애자, MC.R로 통한다. 촉과 감을 겸비한 셀럽이 되고자 한다. 롯데마트, 11번가, GS홈쇼핑, (다시 11번가), 위메프 등 다양한 온오프라인 유통업체를 경험했다. 기획, 전략, 운영혁신 전문으로 정작 유통은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은 함정이다. 이후 물류스타트업 원더스에서 재직하며 물류맛을 봤다. 로지스타포캐스트2017 공저자로 참여하면서 글 쓰는데 흥미를 느꼈으며, “내가 살아가는 모든 곳에 공기 다음으로 물류가 있다”, “월급이 매너를 만든다” 등 본인 스스로 만든 어록에 감탄하고 있다. 별도로 ㅋㅇㅁ라는 커피사랑모임으로 위장한 단체의 운영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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