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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화를 가로막는 벽, 규제

by 김동준 기자

2018년 04월 13일

규제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례부터 규제 공백까지

中, 업계서 자율적 규제책 내놔… 자율주행차 제도 정비하는 日

 

 

Idea in Brief

우리가 미래를 상상할 때, 온갖 기술과 혁신이 융합돼 만들어진 유토피아를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만큼 단순하지 않다. 다양한 법・제도적 이슈가 얽히면서 기술과 규제가 상충되거나, 혹은 애매모호해지곤 한다. 기술과 규제의 경계선이 무인화를 포함한 업계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역대 정부는 항상 규제 개혁을 외쳐왔다. 이번 정부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 정부는 신제품과 신서비스 출시를 우선적으로 허용하고, 필요할 경우 사후 규제하는 체계를 갖추겠다는 개념의 새 정부 규제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뒤이어 국무조정실은 ‘신산업 분야 네거티브 규제 발굴 가이드라인’을 관계부처 합동으로 만들었다. 그때부터 등장한 용어가 ‘규제 샌드박스’와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다.

 

취지는 좋았다. 신기술을 활용한 신사업의 테스트베드가 만들어지고, 금지항목을 제외한 나머지 신기술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겨났다. 특히 4차 산업혁명과 연관성 깊은 미래지향적 기술 분야에서의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가상화폐 규제 양상은 이 같은 기대감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금융당국은 최초 가상화폐 거래로 발생하는 일부 사행성 피해를 막겠다는 목적이었지만 이미 가상화폐의 근간인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할 궁리를 하고 있는 일본과 미국 등 여타 선진국에 비하면 규제 일색이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처럼 규제는 신산업과 시너지를 낼 수도, 혹은 마이너스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무인화와 관련한 다양한 분야가 태동기를 맞이하고 있다. 과연 법・제도적 규제는 무인화 및 그에 따른 기술과 협력・보완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까.

 

신선식품 자판기,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최근 농협은 사물인터넷 기술을 활용한 육류 자판기를 대중에 선보였다. 스윗밸런스 같은 업체도 샐러드 자판기 사업을 시작했다. 이처럼 신선식품을 자판기로 판매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현재 시장상황을 놓고 보면 무인 유통채널을 운영하는 대부분의 업체들은 비교적 초기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자판기를 플랫폼으로 활용한다.

 

일반적으로 식품 자판기는 식품위생법으로 관리된다. 때문에 규제로 인한 사업의 제한이나 규제 공백 등은 아직까지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최재욱 농업기술실용화재단 센터장(변호사)은 “자판기를 통해 신선식품을 판매한다 하더라도 식품위생법으로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굳이 추가적인 규제가 마련되지 않더라도 제도적으로 커버하기엔 충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농협은 지난해 육류 자판기를 대중에 공개했다. 일반적인 가공식품이 아닌 신선식품을 자판기에서 구매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자판기를 통한 영업’의 개념은 유통기한 1개월 이내의 완제품을 자판기에 넣어 판매하는 경우를 말한다. 때문에 자판기로 신선식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와 관련 기관에 신고를 해야 한다. 또한 자판기에서 판매되는 식품은 공인된 제조시설에서 만들어진 제품이어야 한다. 더불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식품에 대한 제조허가를 받는 것도 중요하다. 제조허가를 받고 생산된 제품은 품목에 따라 유통기한이 정해진다.

 

3) 업종별 시설기준 <개정 2017. 12. 29.>

가) 식품자동판매기(이하 “자판기”라 한다)는 위생적인 장소에 설치하여야 하며, 옥외에 설치하는 경우에는 비・눈・직사광선으로부터 보호되는 구조이어야 한다.

나) 더운 물을 필요로 하는 제품의 경우에는 제품의 음용온도는 68℃ 이상이 되도록 하여야 하고, 자판기 내부에는 살균등(더운 물을 필요로 하는 경우를 제외한다)・정수기 및 온도계가 부착되어야 한다. 다만, 물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는 제외한다.

다)자판기 안의 물탱크는 내부청소가 쉽도록 뚜껑을 설치하고 녹이 슬지 아니하는 재질을 사용하여야 한다.

라) 삭제 <2011.8.19.>

 

하지만 일각에서는 자판기와 관련한 법 조항이 과거 커피자판기 시절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다. 기술이나 업태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데 법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육류나 샐러드 등 신선식품이 자판기를 통해 판매되고 있는데 또 다른 개념의 자판기가 등장하면 법이 기술과 업태를 따라가지 못하는 역전현상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최 센터장은 “현재 식품 자판기와 관련된 법령은 다소 올드한 측면이 있다”며 “미래를 대비한다는 측면에서 개정 필요성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제도가 바뀌기도 전에

 

무인화 추세를 지원하기 위한 법・제도적 개선 노력이 특정 이해당사자로부터 반발을 사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의약품 자판기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다.

 

정부는 2016년 규제개혁의 일환으로 의약품 자판기 도입을 정부입법으로 추진했다. 개념은 이렇다. 주말이나 야간, 병원에 가기 힘든 경우 의약품 자판기를 통해 감기약, 소화제 등 상비약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단, 자판기에 설치된 영상장비를 통해 약사와 통화하고, 복약지도를 받아야만 약을 구매할 수 있도록 정했다. 의약품에 대한 오남용 및 안정성 논란이 있기 때문에 환자는 약사가 골라주는 데로 약을 구매해야 한다. 또한 의약품 자판기에서 의약품을 구매할 때는 근거가 남도록 카드로만 결제할 수 있다는 전제도 달았다.

 

하지만 약사들은 의약품 자판기 도입의 완전 폐기를 주장하고 나섰다. 약사들 가운데 일부는 정부가 의료영리화를 추진하기 위한 일환에서 이 같은 정책을 펴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한 상황이다. 자판기 설치에만 수 천만 원이 들고, 이미 대부분 편의점에서 일반의약품이 판매되고 있는 상황에서 의약품 자판기를 찾을 환자가 없을 것이란 판단도 작용했다.

 

다른 사례도 있다. 도시형 생활주택이나 주거용으로 세워진 오피스텔 등 공공주택 1층에 설치된 ‘무인 택배함’이 비운의 주인공이다.

 

▲최근 대다수 공동주택에는 무인 택배함이 설치되고 있는 추세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무인 택배함은 점차 필수적인 시스템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지난해 김두관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공동주택에 무인 택배함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주택법’과 ‘공동주택관리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공동주택의 관리주체는 입주자대표회의 의결을 통해 무인 택배함을 설치할 수 있고, 공동주택 입주자 과반의 서면동의가 있을 시 장기수선충당금을 설치비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게 법안의 주요 골자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국회에서 계류중인 상태다. 건설업계가 무인 택배함 설치 의무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주택협회는 김두관 의원의 법안이 발의되자 곧바로 법안에 대한 검토 의견을 국토교통부에 의견서 형태로 제출했다. 30가구 이상 거주하는 공동주택 가운데 관리사무소가 있는 곳에는 무인 택배함을 설치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주장의 근거는 무인 택배함 설치에 드는 비용을 들었다. 해당 법안이 본회의까지 통과할 경우 새로 지어지는 공동주택의 무인 택배함 설치 부담은 건설사에게 넘어간다. 건설사 입장에서 무인 택배함 설치 의무화는 눈엣가시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엄성환 스마트박스 이사는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의 본 취지는 공동주택에서 경비원이 택배를 받아주고 관리하는 소요를 줄이는 데 있다”며 “공동주택을 관리하는 업체나 건축사 등은 비용 문제 때문에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사례는 어떨까

 

해외에서도 업종과 업태를 불문하고 무인화 추세가 가속화되는 모습이다. 특히 소비인구가 많고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중국에서는 무인 유통채널에 대한 업계의 자발적 규제가 시도되고 있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자율주행차에 대한 규제 공백을 메꾸기 위한 관련 제도 정비를 검토하고 있다.

 

우선 중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코트라에 따르면 중국의 무인 유통시장은 크게 무인 판매기, 무인 가판대, 무인 편의점 등 3종류로 구분된다. 그 중 무인 판매기는 이미 시장 성숙기에 접어들었고, 무인 가판대의 경우에는 초기비용이 적게 들어가지만 그만큼 시장규모도 작다는 게 코트라의 분석이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무인 편의점이다. 알리바바의 타오카페나 빙고박스로 대표되는 중국의 무인 편의점 규모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전년 기준 중국 내 무인 편의점 이용규모는 600만 명 수준이다. 향후 5년 간 무인 편의점 이용자 수는 크게 증가해 2022년에는 2억 4,500만 명에 달할 전망이다.

 

이처럼 커져가는 무인화 추세에 발맞춰 중국 프랜차이즈 협회는 ‘2017 중국 소매창업 서밋’에서 ‘무인소매업체운영지도’를 발표했다. 이는 무인 판매와 관련한 중국 산업 분야에서 나온 최초의 규범이자 정부가 아닌 민간 차원에서 나온 자율규제책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무인 판매에 있어 필요로 하는 업체의 조건, 비즈니스 모델, 제품 관리와 CS 등 영역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또 다른 무인화의 양상인 자율주행차의 사례에서는 규제 공백이 문제로 떠오른다. 기본적으로 자율주행차라는 개념은 사고가 발생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이론 상 각종 기술을 바탕으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가 사고가 난다면 운전석에 앉아있었던 운전자 때문일까, 아니면 자율주행차를 제조한 제조사 때문일까.

 

그럼에도 만에 하나 자율주행차를 탑승한 채 사고가 났다면 그 책임소재는 어디에 있을까.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이에 대한 책임소재를 판가름할만한 법・제도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자율주행차를 탑승한 운전자를 기준으로 보면 운전이라는 행위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의 책임이 운전석에 앉아있었던 탑승자에게 있는지, 자율주행차를 제조한 제조사에게 있는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힘들다.

 

이에 일본 국토교통성은 자율주행차량에 운전기록 장치의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레벨 3~4 단계의 자율주행차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고 주체를 명확히 하겠다는 의도다.

 

일반적으로 레벨 3단계 이상의 자율주행차는 사람의 개입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운전 기록 장치를 통하지 않고서는 핸들과 브레이크 작동 등 구체적인 차량의 구동 기록을 확인하기 힘들다. 만약 이 같은 운전 기록장치가 장착되면 추후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보험회사나 사고 당사자가 과실비율을 책정하는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김동준 기자

청와대 대변인실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정치부/산업부 기자로도 일했다. 지금은 CLO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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