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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운송 플랫폼’은 왜 대기업의 무덤이 됐을까

by 임예리 기자

2018년 07월 17일

대기업도 좌절하는 화물정보망 플랫폼, 실패 요인은 무얼까

화주와 차주 안착시킬 네트워크 확장성의 한계 문제점으로 꼽혀 

 

Idea in Brief

 

계열 화주사의 대규모 물량을 갖춘 대기업이라도 쉽게 성공하지 못하는 물류 영역이 있다. 국내에선 화물정보망이라 불리는 화물운송 플랫폼이 그것이다. 물류업체인 한솔로지스틱스가 론칭한 ‘다이렉트넷’은 전략 수정으로 화물정보망 서비스를 약화시켰다. 2016년 IT·유통기업으로 SK플래닛이 야심차게 내놓은 플랫폼 ‘트럭킹’은 출시 1년 만에 서비스 종료 소식을 알렸다. 업계에서는 해당 분야의 후발주자인 대기업 물류 플랫폼들은 화물운송시장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화주와 차주를 안착시킬 요인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2010년 전후로 전 산업계에 불었던 O2O의 바람은 화물운송 업계에도 퍼졌다. 온라인에 기반한 물류 플랫폼을 통해 화주(화물)와 차주(차량)를 연결해주는 서비스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UPS의 코요테로지스틱스(Coyote Logistics), C.H 로빈슨(C.H Robinson), 일본의 트라박스(Tr@box), 중국의 훠처방(货车帮), 윈만만(运满满) 등이 물류 플랫폼을 론칭한 대표적인 해외기업 사례다.

 

국내라고 다를까. 한국 화물운송업계에서는 물류 플랫폼이라는 말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화물정보망’ 혹은 ‘운송가맹망사업’이라는 말이 시장에서 통용됐다. 한국교통연구원은 2014년부터 화물정보망을 이용한 물량확보 방법과 이용료 지출에 대해 분석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데, 차주가 화물정보망을 이용하는 비율은 매년 높아져 2015년은 2014년 대비 170% 정도 늘어났다. 현재는 90% 이상의 차주들이 화물정보망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화물운송시장에서 플랫폼을 활용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자, 2015년 이후엔 대기업 계열사도 잇따라 화물운송 플랫폼 모델을 론칭했다. 2015년 론칭한 한솔로지스틱스의 ‘다이렉트넷’과 CJ대한통운의 ‘헬로’가 대표적이다. SK에너지는 앞선 이들보다 이른 2004년 ‘내트럭 프렌즈’ 서비스를 선보였다.

 

화물운송시장의 플랫폼 바람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평가받는 2016년엔 화물운송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전국적으로 70여 개까지 늘어났다. 특히 2016년 9월,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11번가의 운영사 SK플래닛이 선보인 ‘트럭킹’은 IT·유통 기술을 기반으로 자사의 강점인 커머스 부문과의 연계해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이 보인다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대기업도 실패하는 화물운송시장

 

그런데 아직까지 대기업 산하의 화물운송 플랫폼의 성적은 영 시원찮은 모습이다. 한솔로지스틱스의 다이렉트넷은 현재 화물정보망 서비스보다는 환송되는 빈 컨테이너를 활용한 운송을 중개하는 서비스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한솔로지스틱스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2016년 말까지 한솔로지스틱스는 자차를 거의 보유하지 않는 상태에서 대부분 운수사와 협력해 사업을 추진해왔다. 그러다보니 운수사가 한솔로지스틱스의 화물정보망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으면 성장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한솔로지스틱스가 자차를 늘리고자 했지만, 지진부진 해졌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결국 한솔로지스틱스의 플랫폼 사업은 내륙에서 화물을 내린 후 빈 컨테이너를 항구로 보내지 않고 인근 다른 화물을 운송할 수 있도록 주선하는 사업으로 돌아섰다.

 

아예 서비스를 종료한 경우도 있다. 트럭킹은 개시 1년만인 지난해 9월 서비스 종료 소식을 알렸다. 풍부한 인적·물적 자원과 협력 네크워크를 가진 대기업들이 유독 화물운송 시장에서 맥을 못 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화물유통 O2O 비즈니스모델에 대한 차주의 인식 연구(구병모, 2017)

 

‘24시콜’을 넘지 못한 대기업

 

대기업의 물류 플랫폼이 성장하지 못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기존에 있던 경쟁자들의 네트워크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화물정보망은 화주와 차주의 네트워크에 기반한 서비스다. 즉 플랫폼의 경쟁력은 네트워크 효과이고, 그 효과는 네트워크의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기존 화물정보망의 시장점유율이 공고하고, 이미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화물정보망 시장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전국24시콜화물’은 5톤 이하의 화물운송 영역에서, ‘화물맨’은 11톤 이상의 중량화물운송 영역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이에 반해 후발주자인 대기업의 물류 플랫폼들은 자신의 플랫폼에 사용자들을 안착시킬 요인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시장 진입 초창기, 대기업의 화물운송 플랫폼들은 각종 할인 혜택을 내세우며 화주와 차주를 공략했다. 가령 트럭킹은 론칭 당시 업계 통상 요금보다 20% 가량 저렴한 화물정보망 사용료를 내세워 마케팅을 진행했다.

 

하지만 가격 효과는 보통 오래가지 못했다는 평가다. 할인이 종료되거나 다른 회사가 더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는 순간 가격 효과는 사라진다. 벤처 인큐베이팅업체 테크스타스(Techstars)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데이비드 코언(David Cohen)은 WSJ와 인터뷰를 통해 “무료 가격 모델을 수익형으로 전환하려면 그전에 수백만 명의 고객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트럭킹 서비스는 애초부터 무료 모델이 아니었다. 하지만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주어진 할인 혜택이 사용자에게 크게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론칭 당시 트럭킹이 확보한 차주는 1만여 명, 하루 물동량은 겨우 5,000건 정도였다.

 

또한, 화물정보망 사용료를 내는 차주 입장에서 새로운 플랫폼은 물량이나 단가 면에서 기존 서비스와 별 차이가 없었다는 의견도 다수 존재했다. 화물기사로 일하는 A씨는 “아마 대부분의 기사들은 전국24시콜화물, 화물맨의 서비스가 특별히 뛰어나서라기보다 가장 많은 주문이 올라오기 때문에 사용하고 있을 것”이라 전했다.

 

화물운송업계 관계자 B씨는 “기존 대기업들의 정보망은 일부 화물정보망의 경우처럼 기사나 물건을 공유하는 방식을 활용하지 않고, 서비스들 간 협력체계가 전무하다보니 자체 확보한 정보와 물량만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와 관련해 진행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차주가 가장 선호하는 화물정보망 유형은 물량을 많이 확보한 사업자(85.2%)였고, 우수 화물정보망 인증을 취득한 화물정보망(59.7%), 모바일 조작 및 이용이 편리한 화물정보망(57,7%)이 그 뒤를 이었다.

 

많은 물량이 화물운송 플랫폼이 가져야 할 덕목이라면, ‘저단가’는 피해야 하는 부분이다. 차주가 현재 이용하고 있는 화물정보망의 불편사항으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은 저렴한 화물운송요금(31.6%)이었으며, 과도한 알선업자의 공제(27.6%)와 운임표준화 선도 미흡(7.1%)이 그 뒤를 따랐다.

 

B씨는 “화주나 운송주선사 입장에서는 저단가의 주문도 수행할 수 있는 기사들이 있을 정도로 (기존 플랫폼에) 기사가 많기에 해당 플랫폼에서 계속 주문하는 것”이라 덧붙였다.

 

 

플랫폼의 영원한 숙제, 닭과 달걀

 

이 대목에서 플랫폼으로서의 화물정보망의 고민이 드러난다. 대기업은 충분한 기사풀이 있어야 화물을 유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기사들은 풍부한 화물이 있어야 해당 플랫폼으로 유입된다. 물론 화물운송기사에 대한 정산 시기나 저단가 등 해결해야 할 부분은 많다. 하지만 서비스 제공자와 수요자가 동시에 증가하고, 양측의 적절한 매칭이 이루어져야 해당 플랫폼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은 명확하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에 대해 대기업의 영업방식이 화물운송 시장에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영세한 화물운송 업체들은 화주로 타깃팅을 한 사무실이나 업체를 돌며 오프라인 영업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기업의 화물정보망의 경우 직접 화주를 영업하기보다는 운송 주선사와 협력해 물량을 유치하고자 한다. 즉, 화물운송 서비스가 필요함을 느낀 화주 입장에서는 해당 플랫폼이 아닌 머릿속에 떠오른 업체를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화물운송업계 관계자는 “사업실적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화주와 컨택해 온 업체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며 “이 외에도 실제로 대기업이 론칭한 화물운송 플랫폼을 보면 차주나 운영사의 입장이 반영되어, 화물을 보내고자 하는 사람이 이용하기엔 차량 조회나 주문 입력 등 다방면에서 다소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고 전망했다.



임예리 기자

三人行,必有我师。 페이쓰북 / 이메일: yeri@clo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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