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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 최적화, 그리고 DATA, ‘석유시장은 어떻게 역(逆) JIT를 이뤘나’

by 이병휘

2020년 02월 24일

글. 이병휘 Coty Korea SC Lead

 

토요타로부터 시작된 JIT는 Supply Chain Management와 관련된 사례 중에서도 특히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재고관리 방식이다. 때문에 제조 외에 다양한 산업에서 접목을 시도했으며, 지금까지도 유효한 프로세스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JIT식 재고 최적화 방식은 모든 산업에 있어 유효할까? 온라인 기반 직매입 유통, OED와 ODM 중심의 생산, 떠오르는 웹 & 모바일 기반 신선식품 시장에서도 도입이 가능할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독특한 방식으로 JIT를 적용한 석유, 그리고 의류시장을 살펴본다. 그 가운데 진정한 재고 최적화를 위해 필요한 요소,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가 본다.

 

토요타가 이룬 재고 최적화

 

재고 관리와 구매, 생산 관리에서 토요타는 여러 가지 업적을 남겼다. KANBAN으로 대표되는 태스크 관리 프로세스는 이제 제조업뿐 아니라, IT업계에서의 생산관리용 목적으로도 쓰이고 있다. Just In Time(이하 JIT) 또한 토요타가 Supply Chain 업계에 소개한 개념이다. 기존 제조업 가지고 있던 Cycle Stock 이나 Safety Stock 등 당장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재고를 보유하는 방식과 달리, 생산의 각 단계별로 필요한 순간에만 재고를 투입하는 방식이다.

▲ KANBAN과 JIT를 탄생시킨 토요타(사진: 토요타 UK)

 

토요타는 상대적으로 JIT를 적용하는데 유리하다. 자동차 산업이기 때문에 ‘선주문/후생산’ 방식을 거치니 장기적인 생산 요구 사항 확보가 가능하고, 공용 자재 등의 비중이 높아 재고 관리 및 소진이 용이하다. 물론 유리한 환경이라고 해서 쉽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각각의 재고가 발주 후 공장에 도착해 라인에 투입될 때까지의 절대적인 시간, 주말 등을 고려한 납품 가능일자, 각 자재가 라인에서 재고가 소비될 때의 실제 수율 등을 고려해 조정하지 못하면 절대 시도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데이터는 생각보다 많은 회사에서 가지고 있지 않거나, 단지 ‘감’으로만 알고 있다. “이만큼 넣으면, 저만큼 나오지 뭐. 허허”

 

과연 JIT는 모든 산업에 유효한가

 

재고/재화가 흘러가는 줄기를 물류라고 한다면, 중간의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쌓은 둑은 자연스럽게 전체 수위를 상승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IT는 유혹적이다. 특히나 요즈음의 온라인 유통시장처럼 직접 매입을 통한 판매가 점점 주류가 되어가고, OED이나 ODM 생산이 활발해 생산량에 대한 조정이 어려울 경우, 중간 제조사의 재고는 증가하게 된다.

 

요즘 성장하는 신선제품 시장처럼 제품의 유통기한이 짧으며, 생산에 대한 관여가 거의 불가능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 경우에도 재고나 폐기수준을 이상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결품에 의한 판매 손실이나 고객서비스에 대한 불만족을 인정하면 된다. 일/주/월간 판매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고, 품목별 판매량에 대한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하고, 100%의 확률로 판매 가능한 수량만 매입하면, 판매 손실은 있겠으나 폐기/재고 부담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 온라인을 기반으로 직매입을 통한 판매, 신선식품 배송이 떠오르고 있다. (사진: 쿠팡)

 

한때 JIT는 유행처럼 여러 산업으로 퍼져 나갔다. 허면 과연 장기적인 데이터를 확보할 수 없는 다른 산업에서도 JIT를 통해 정말 원/부자재 생산 및 공급을 하는 파트너사와 제조사, 그리고 유통업체를 포함한 전체 Supply Chain의 재고 숫자를 줄였을까? 선주문/후생산이 아닌 일반적인 산업을 예로 들어, 다소 극단적인 조건이지만 간단히 계산해보자.

 

[표1]


 

이상적인 그림은 <표1>과 같다. 이론적으로 전체 공급망에서의 재고일수는 30일에서 19일로 약 37%가량 감소한다. 이 방식을 유지하기 위한 대전제는 전체적인 생산계획에 변경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정된 계획대로 판매와 생산이 이루어져야 하고, 자재와 상품의 배송 또한 예정된 시간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만 현실은 안정성과는 큰 인연이 없으니, 변동사항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판매가 호조를 보이면 제조업체는 생산량을 늘리고 싶지만 자재 재고가 부족하다. 판매가 부진하면 제조업체의 3일치 재고량은 5일, 6일치가 되며 기존 생산되어 배송되려던 자재들은 공급업체에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표2]

<표2>를 보면 결국 최종적으로는 높은 확률로 공급업체가 모든 재고 부담을 떠안고서 전체 공급망의 불안정성을 책임지게 된다. 이는 JIT의 핵심인 재고 최적화와는 거리가 멀다.

 

석유, 그리고 의류시장에서의 JIT

 

사실 생산에 대한 관여가 거의 불가능하고, 재고의 위치와 시점에 따라 매출이 바로 적용되는 시장은 이미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바로 석유시장이다. 생산량은 수요보다는 정치적인 이유에 의해서 주로 결정되고, 선물/선도 시장이 발달한 시장이다 보니 현물의 시장가격뿐만 아니라 재고의 구입 시점과 위치에 따라서 그 이익률과 매출이 시시각각 달라진다. 석유 제품의 특성상 항공으로 단기간에 이동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수만 톤급의 유조선을 통해서 전 세계로 재고를 이동시킨다. 이처럼 특이한 시장인 만큼 일반적인 제조업에서는 볼 수 없는 상황도 예외적이지만 발생한다.

▲ 전 세계로 석유 재고를 이동시키는 유조선(사진: 삼성중공업)

 

예를 들면, 판매처가 정해지지 않아도 가격 등 조건이 좋거나, 판매처를 잃어버린 물량을 가진 유조선을 판매후보지로 먼저 출발시킨다. 출발지와 목적지에 따라 다르겠으나 이동에 통상 4-8주가 걸린다고 할 때, 그 이동 시간동안 판매처를 찾는 것이다. 제조업이나 유통이라면 판매처가 정해지지 않은 부진재고지만, 석유시장에서는 판매처입장에서도 빠른 시간에 구매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제품이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이지만, 일종의 역 JIT인 셈이다. 언제든 재고를 최적화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JIT와는 좀 다른 접근이지만, 생산과 판매의 간극을 줄여 재고의 최적시간 배치를 이루어낸 사례도 있다. 의류 산업은 전통적으로 재고에 대해서 관대한 편이었다. 어떤 디자인, 사이즈, 색상의 제품이 성공할지 쉽게 예측하기 어렵고, 대부분 시즌이 짧은 편인데다가 글로벌 공급망이 일찍 보급되기 시작한 탓에, 초기 입고 재고가 떨어지고 나면 추가 물량으로 매출을 복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과재고를 준비하고 악성재고는 아울렛을 통해 소진하거나 폐기하는 방식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세계 각지에서 시장과 떨어져 생산하던 거점들을 주요 시장 주변으로 이동시킨 사례도 있다. 재고가 이동에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줄어든 이동시간을 통해 과재고의 필요성을 줄이며, 시장에 대한 반응성을 높여 새로운 경지의 시장을 창출한, ZARA로 널리 알려진 Inditex다. 산업 환경에 따라 또 다른 방식의 최적화를 이룬 사례라 할 수 있다.

▲ 새로운 방식으로 재고 최적화를 이룬 ZARA

 

최적화의 답은 데이터 ‘축적’

 

위에서 설명한 모든 사례들은 사실 실행만 놓고 보면 그 과정에서 아주 고난이도의 분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영어단어장에도 들어간다는 빅 데이터나 인공지능이 나오기도 전부터, 이메일이나 엑셀이 당연하게 업무에 동원되기 전부터 등장해 활용된 사례들이다.

 

그 가운데 공통적으로 요구되었던 한 가지 조건을 추측해보자면 데이터의 축적이다. 자재 수요에 대해 파트너사들이 확인하는 입고 가능일과 실제 입고일간의 비교, 투입된 자재와 완성품의 비교에 따른 수율, 과거 판매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단기간의 현금 동원력과 석유 수요대비 실공급량에 따른 잔여 수요 또는 수용량에 대한 예측, 폐기된 또는 헐값에 판매된 재고에 의한 손실, 생산 거점의 이동에 따른 실 생산비용의 증가, 이동시간 및 재고 감소에 의한 금융 이익, 시장에서의 초동 반응을 바탕으로 빠른 의사 결정을 이뤄낼 수 있는 판매 데이터의 축적 등 재고최적화에 앞서 기초적인 정보들을 축적하는 과정이 필수다.

 

꾸준하고 꼼꼼하게 쌓여진 데이터가 모여 당연하다 싶은 기존의 방식으로부터 여유로움을 걷어내고, 빠듯하게 짜인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많은 비용을 들여 도입한 ERP를 두고도 여전히 많은 실무 담당자들이 엑셀을 붙든 채 시간을 보낸다. 마케팅 데이터나 고객데이터를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일은 Data Analyst나 Data Scientist 등 유망한 직업을 탄생시켰지만, 물류나 생산 데이터는 아직도 제대로 된 축적과 분석의 대상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늘 최적화의 대상인 재고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변화는 다소 더디다.

 

JIT는 재고의 ‘이전’이 아니다

 

누구나 필요로 하지만, 누구도 책임지고 싶지 않는 것, 재고다. 과거에는 판매 손실에 대한 우려가 주로 안전 재고를 늘리는 원인이었다면, 요즘의 주요한 주제는 소비자 경험을 중심에 둔 서비스 레벨에 대한 대응이다. ‘꼬꼬면’이나 ‘허니버터칩’ 사례로부터 많은 제조업체들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 그 수요가 얼마나 빠르게 사라지는지 깨달았다. 더불어 빠르게 대응한 경쟁사 좋은 일만 시킨다는 것도 말이다.

▲ ‘품절 대란’을 일으켰던 허니버터칩과 꼬꼬면

 

공급망의 공이 제조에서 유통을 거쳐 플랫폼으로 넘어간 지금, 많은 경우 담당자들은 서비스 레벨 상승과 적정 재고 유지를 동시에 달성하기를 요구받는다. 이 때 제대로 운용만 된다면 JIT는 모두가 꿈꾸던 이상적인 상황을 내놓을 수 있다. 최소 재고로 서비스와 매출을 달성하고, 줄어든 재고는 현금흐름도 최적화 시키게 된다. 최소화된 재고는 보관에 필요한 창고나 그 재고를 운용하는데 필요한 운영인력 수요도 같이 줄이게 된다.

 

단,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무조건적인 JIT 도입을 추진한다면 앞서 표에서 본 것처럼 재고부담을 공급업체가 떠안는 등 결국 갑질로 이어진다. 내 손에 없다고 그게 재고가 아닌 건 아니니까. JIT의 의미는 재고의 최적화이지, 재고의 이전이 아니니까.



이병휘

이병휘 SCM칼럼리스트는 생활용품, 전자제품, 식품, 화장품을 다루는 여러 제조·유통업체를 거치면서 SCM, 수요예측을 담당해왔다. 주요 관심사는 SCM프로세스와 정보 가시성(Information Visibility)이며,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에 눈을 돌려 물류산업에서 활용을 고민하고 있다. 거창한 주제가 오고갔지만 결국 페북에 중독된 평범한 월급쟁이다. (byunghw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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