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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자회사 ‘갑질’에 휘청이는 3PL과 선사

by 임예리 기자

2017년 05월 11일

자회사 물량 바탕으로 성장한 2PL이 해운 전체 왜곡

문제는 화주가 물류를 비용절약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것

공정경쟁

글. 임예리 기자

 

심각한 대기업 물류자회사 ‘갑질’

 

대기업의 횡포, 혹은 갑질.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장악해 영세 사업자의 피를 말린다는 이야기도 낯설지 않다. 그런데 최근 해운업계에서도 이와 관련된 이슈가 불거지고 있다. 대기업 물류 자회사가 제3자 물류업체와 선사에 일종의 ‘갑질’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논란은 지난 2월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인천 부평갑)이 ‘대기업 물류 자회사 갑질 방지를 위한 해운법 개정안 법률안’을 대표 발의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지난 3월 7일에는 정유섭 의원이 주최하고 선주협회,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 한국국제물류협회가 공동 후원하는 ‘해상수송시장의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을 위한 국회 정책세미나’(이하 세미나)가 개최되기도 했다.

 

주최 측은 현대글로비스, 범한판토스, 롯데로지스틱스, 삼성SDS 물류부문, 삼성전자로지텍, 한익스프레스, 효성트랜스월드를 한국의 7대 대기업 물류 자회사로 꼽았다. 이들은 2000년대 이후 모기업의 물량을 바탕으로 급격히 성장했다.

공정경쟁, 정책세미나▲ 지난 3월 열린 ‘해상수송시장의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을 위한 국회 정책세미나’. 세미나가 열린 날은 한진해운이 상장 폐지되는 날이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상근부회장은 “해운업계 매출은 2010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성장률도 2000년부터 15년간 2.3배에 그쳤다”며 “반면 대기업 물류 자회사는 모기업 물량을 바탕으로 3자 물류시장의 물량을 대거 흡수, 같은 기간 72배나 성장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그는 대기업 물류 자회사의 그룹의존도가 77%에 달해, 계열기업의 일감 몰아주기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러한 대기업 물류 자회사의 횡포에 따른 피해는 3자 물류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중소 3PL업체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대기업 물류 자회사, 그룹거래 의존도▲ 출처: 금융감독원, 전자 공시시스템
 

 

또한 김 부회장은 “작년 7대 대기업 물류 자회사가 처리한 수출입 물동량 411만 TEU 중 207만 TEU는 계열사 처리물량, 104만 TEU는 3자 물량인데, 이들의 주요 업무는 사실상 물류주선업(포워더)”이라며 “우리나라 전체 수출입물동량의 27%, 수출물동량의 42%를 차지하는 대기업 물류 자회사가 높은 시장지배력을 무기 삼아 선사에게 과도한 운임 인하를 요구하는 등 해운시장을 왜곡시켜 왔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자면, 모기업과 계열사의 물량을 자양분 삼아 성장한 대기업 물류 자회사가 3자 물류 물량을 가로채고, 심지어 선사에까지 갑질을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 물류 자회사, 거래형태 변화▲ 선주협회 측에서 주장하는 대기업 물류 자회사의 거래형태 변화. 2000년도 이전까지는 대기업 내의 수송팀이나 물류전담팀이 선사와 직접 거래를 하거나 일부는 중소 포워더와 연결해 중소 포워더와 선사가 거래했지만, 2000년도 이후에는 수송팀이 별도 법인으로 설립되면서 대부분의 물량이 2자 물류기업으로 흘러들어가고, 2자 물류기업은 중소화주 포워더의 물량을 흡수하면서 선사와 직접 거래하는 방식으로 모습이 바뀌었다. 대기업 물류 자회사, 즉 2자 물류기업이 대기업 화주와 선사 사이에 위치하면서 일종의 통행세를 받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선주협회 측의 주장이다.

 

김 부회장은 대기업 물류 자회사가 자행하는 이른바 ‘슈퍼갑질’로 다음의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1)운임만 명시하고 물량, 운송기간 등 계약 내용은 수시로 변경 2)수차례의 가격제시(Bidding)에도 원하는 운임에 도달하지 않으면 개별접촉을 통해 운임인하 3)대기업 물류 자회사에 비협조적인 선사는 2~5년간 비딩 참여 제한 4)신호등 비딩 시스템을 도입하여 통과나 탈락을 색으로 표시해 암시적인 운임인하 강요 5)비딩에 불참할 땐 외국 선사를 이용하겠다며 선사를 압박하는 것 등이다.

 

해운 업계에서는 이런 행위가 오래 전부터 있었던 관행이라는 반응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2PL업체와 3PL업체의 갈등은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특수한 것”이라며 “이런 사태가 발생한 배경에는 화주가 물류를 비용절약의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관점, 즉 낮은 운임으로 물류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최고의 물류 전략이라는 관점이 깔려있는 듯하다”고 전했다. 김성만 변호사는 세미나에서 “대기업물류 자회사가 선사에 자행하는 슈퍼갑질이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선사는 이런 행위에 대해 쉽사리 항의하거나 신고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갑을’ 관계가 명확한 상황에서 공정거래법 위반 등으로 화주를 신고하는 것은 ‘화주와 거래를 끊겠다’고 선전포고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한 선사 관계자는 “경쟁자는 늘어난 반면 시장의 수요는 줄어든 현재 해운시장에서 물량을 가진 이에게 불만의 표시를 하기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원인은 실효성 없는 규제

 

이러한 상황의 배경으로는 물류업의 특성과 정부정책의 실패가 언급된다. 많은 물량을 가진 재벌 그룹이 물류 자회사에 그 물량을 몰아주면, 자회사의 매출과 기업 가치는 빠르게 상승한다.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 이처럼 모기업 물량을 양분 삼아 몸집을 불린 대기업 물류 자회사가 3자 물류 물량을 흡수해 중소 3PL업체의 성장을 가로막고, 선사에 과도한 운임 인하를 요구하는 등 해운업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내부거래를 제재하기 위해 존재하는 규제에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가령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5조의 3에 따르면, 특수관계에 있는 법인(계열사 포함)의 매출액이 30% 이상인 경우 증여세를 부과한다. 하지만 30%라는 비율에 도달하지 않기 위해 물류 자회사는 계열사의 물량을 ‘절대적으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중소 포워더의 물량을 대거 흡수해 전체 매출액 중 계열사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상대적으로’ 낮춘다. 공정거래를 위한 규제가 오히려 약한 중소 포워더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선주협회는 현존하는 규제가 오히려 ‘풍선효과(어떤 부분에서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부분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는 현상)’만을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한국 물류시장의 구조적 허점이 한국에서 3PL업체가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UPS, DHL, FedEx 등 대표적인 물류기업들은 3자 물류업체로 탄생한 뒤, 육상과 항공운송을 통해 전 세계 서비스망을 확보했고, M&A를 통해 성장했다.

 

하지만 국내 2자 물류업체의 경우, 주요 업무가 계열사 물량을 처리하는 것이며, 여기에다 법에 저촉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내부거래 비중을 낮추기 위해) 3PL 물량을 중간에서 가로채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3PL 전문 업체의 성장을 저해하고, 동시에 선사의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김 부회장은 “한국의 7대 대기업 물류 자회사의 2015년 매출액 합이 약 23조였는데, 이는 세계적인 물류기업 매출액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며 “3PL업체를 포함해 선사 역시 규모의 경제를 통한 성장을 이뤄내야 하는데, 정책적 지원이 미미한 국내 상황에서는 세계적인 3PL, 혹은 선사가 나오는 게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이러한 상황에서 해운업계에서는 법과 제도를 통한 근본적, 구조적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중소중견선사의 공동행위 허용’ 요구이다. 공정거래법 제 19조에는 경쟁을 제한하지 않는 선에서 공동행위를 인가하는 예외적 조항이 있지만, 현재는 레미콘 업계에 부분적으로 허가하는 등 소극적으로만 운영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대기업 등과의 거래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중소사업자나 자영업자에게 집단교섭권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최근 의원 입법 내용으로 미뤄보아, 해운시장에서도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한편 대기업 물류 자회사가 모기업 및 계열사의 물량만 취급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해운법 일부 개정안’도 1년 반의 준비기간을 거친 끝에 발의됐다. 김 변호사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다시 만들자는 것이 해당 입법 개정안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가령 소프트웨어산업 진흥법에는 대기업 소프트웨어 업체가 참여할 수 있는 사업금액의 하한을 두는데, 헌법상 위헌 소지가 없다”며 “이는 경쟁 촉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해당 입법 개정안 역시 해운시장의 경쟁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전했다. 또한 그는 해당 입법 개정안이 2자 물류기업의 사업 기회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에 대해 “모든 사업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아닌 국제 물류주선과 해운중개 부분에 한정하는 것이며,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 놓은 결과가 시장 실패를 초래한 현재의 상황에서는 구조적인 접근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해당 개정안은 올해 5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김영무 부회장은 “작년 한진해운 파산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한국 해운 경쟁력 강화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했다”며 “만약 개정안이 이번에 통과가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대기업 물류 자회사의 부도덕한 사례를 발굴해서 정부 측에 지속적으로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현재는 해운시황이 좋지 않지만 언제든 화주와 선사의 입장이 뒤바뀔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 해운시장을 현대상선이 독점하는 구조가 되면서 현대상선이 운임을 올릴지 많은 화주와 포워더가 관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글로벌 해운시장이 몇 개의 대형 선사로 재편되면 선사들이 운임을 올리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한국 해운 경쟁력 약화로 인해 국내 화주와 포워더가 향후 해운 운임 상승의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종길 성결대학교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는 “한국 국적선사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 한국의 화주나 포워더는 운임 상승에 방어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작년 5월,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남미 노선에서 철수하자, 머스크는 남미지역에서 독점 노선을 운영했고, 그 결과 운임은 5배 이상 뛰었다.

 

한편 한 대기업 물류자회사 관계자는 “선사에 대한 운임 인하 압박은 대기업 물류 자회사뿐만 아니라 어느 화주든 간에 제기할 수 있는 문제”라며 이와 함께 “운임 인하 압박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고 밝혔다.



임예리 기자

三人行,必有我师。 페이쓰북 / 이메일: yeri@clo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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