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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통의 미래(?) ‘무인상점’, 보데가 논란이 남긴 것들

by 김정현 기자

2017년 09월 28일

무인상점 스타트업 '보데가', 골목상권 침탈로 논란

이슈1 : 고객에 대한 몰이해, 누구를 위한 무인상점인가요?

이슈2 : 제품에 대한 몰이해, '비싸고 있어보이는 자판기' 아닌가요?

뜨는 트렌드 이면에, 고객과 제품에 대한 고민 선행 필요

 

무인상점(가판대)으로 야심차게 서비스를 시작한 한 스타트업이 지난 13일 홍보영상 공개와 함께 논란에 휩싸였다. 이 스타트업이 미국 여론의 비난을 받은 표면적인 이유는 ‘골목상권 침탈’이지만, 그 이면에 있는 이유로는 ‘고객과 제품에 대한 몰이해’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논란의 주인공은 보데가(BODEGA)다. 보데가는 2016년 구글 출신들이 창업한 스타트업으로, ‘무인편의점’이라는 아이템으로 실리콘밸리의 신인 스타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50만 달러의 투자 유치를 하며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알리기 위한 총알을 장전하기도 했다.

보데가 제품사진

 

보데가의 제품은 신유통의 미래라고도 언급되는 ‘무인상점’이다. 이케아의 카탈로그에 나올 법한 수납장 같이 생긴 박스를 골목, 아파트, 체육관, 사무실 등에 설치해서 그 안에 상품을 진열해두고 이용자가 앱으로 결제한 후 상품을 가져가도록 만든 것이다.

 

보데가와 같은 ‘무인상점’ 모델은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업체들의 실험과 함께 각광받고 있다. 아마존의 무인상점 ‘아마존고’, 중국의 ‘빙고박스’ 등이 주목 받았으며, 중국의 배달 스타트업 어러머(Ele.me) 역시 무인상점 시장 진출 대열에 합류했다. 각계 전문가들이 “무인매장의 확산으로 오프라인 매장에서 사람을 찾아볼 수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미래를 예측하기도 했다.

 

논란의 핵심은 ‘사람’

 

역설적으로 보데가가 논란의 중심에 놓인 이유도 ‘사람’이다. 골목마다 들어선 보데가의 무인상점이 기존 구멍가게나 지역 식료품점을 사라지게 할 것이라는 내용이 보도됐고, 보데가가 관련된 수많은 종사자들을 실업자로 만들 것이라는 소문이 사회관계망을 통해 확산됐다.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에 올라온 미국 현지 반응 중에는 “우리는 출근길에 식료품점에 들려 주인과 반갑게 인사하고, 가벼운 간식을 사먹는 정겨움이 담긴 일상을 직원하나 없는 무인상점이 앗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거나 “식료품점을 무인상점이 대체하는 것 자체가 인간적이지 않다”는 보데가를 비판하는 내용이 연일 올라왔다.

보데가의 로고가 '고양이' 형상인 것을 빗대, 고양이와 구멍가게 사진을 함께 찍어 보데가를 비판하는 포스팅이 미국 SNS에 올라오고 있다.

 

보데가는 그렇게 며칠 사이에 실리콘밸리의 신인 스타에서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미움 받는 스타트업이 됐다. 보데가가 비난받는 주된 이유는 ‘골목상권 침탈’에 있지만, 정작 보데가가 놓친 문제점은 다른 곳에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누구를 위한 무인상점인가?

 

보데가가 사업공개를 했던 시점에 그들의 ‘고객’은 명확하지 않았다. 보데가가 13일 공개한 홍보영상에는 보데가를 “당신이 어디에 있든, 당신이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상점”이라 설명했다. 홍보영상만 보자면 “미국 전역에 모든 상품군을 판매하는 상점을 만들겠다”는 맥락으로 읽힌다.

 

더욱이 보데가의 이름에서 불거진 오해도 있었다. 보데가(BODEGA)는 스페인어로 식품 잡화점이라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주로 히스페닉계 이민자들이 이런 소형 잡화점(구멍가게)을 많이 운영하기 때문에 ‘보데가’라는 단어는 소형 잡화점을 일컫는 고유명사로 자리 잡은 상황이다.

 

‘구멍가게’라고 이름 붙여진 신생업체가, “당신이 어디에 있든, 모든 것을 다 팔겠다”라고 주장하며 나왔으니 골목상권 침탈 논란이 충분히 생길 법하다. 실제 미국 여론은 보데가가 동네 구멍가게를 파괴하고자 한다고 추측했다.

 

한 현지 식료품점주는 “고작 2미터짜리 박스가 우리가 필요한 ‘모든’ 상품을 대체할 수 없다”며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식료품점을 파괴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뒤늦은 해명

 

보데가 공동창업자인 폴 맥도날드(Paul McDonald)는 뒤늦게 그의 블로그를 통해 “우리는 기존 보데가(소형 잡화점)들을 대체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라며 “보데가의 목적은 상점이 없는 지역에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것이지 구멍가게를 망하게 하고, 관련 종사자들의 일자리를 뺏으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미국의 경우 국토가 넓은 것에 비해 인구밀도가 낮다. 때문에 뉴욕과 같은 도심이 아닌 경우에는 식료품점이 멀리 떨어져 있으며, 편의점을 가기 위해서 운전을 해야 하거나 몇 십분을 걸어가야 하기도 한다. 이런 불편함을 해결하는 것이 보데가의 목적이였다는 맥도날드 대표의 주장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데가의 아름다운 목적을 안 것은 그의 긴 해명글을 읽고 나서였으며, 이미 보데가는 여론의 몰매를 맞아 너덜너덜해진 이후였다. 맥도날드 대표의 발표로 보데가의 서비스를 응원하는 글들이 SNS에 올라오기 시작했지만, 이미 브랜드 이미지는 실추됐으며 대세 여론은 여전히 ‘비난’ 쪽에 몰려있는 상황이다.

 

‘아름다운 쓰레기’가 아닌가요?

 

보데가의 ‘제품’ 또한 비판의 중심에 있었다. 보데가가 무인으로 결제까지 연동되는 기술을 개발했지만, 소비자에게 있어 그 결과물은 ‘값비싼 자판기’로 비춰졌다.

 

보데가는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도 기존 자판기와 비교해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일반 자판기는 카드나 돈을 넣고 버튼만 누르면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보데가는 어플을 열고, 코드를 입력하고, 상품을 꺼내야 했는데 그것이 사용자 측면에서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평가다. 오히려 새로운 어플을 깔아서 코드를 입력하는 측면에서는 번거로운 부가과정을 수반한다는 비판도 나타났다.

 

미국 현지 소비자들에게 있어 보데가는 기존 자판기와 비교해 구매방법이 조금 더 ‘있어 보이는 자판기’에 불과했다는 평가다.

 

정작 집중해야 하는 것은

 

보데가와 같은 무인매장이 미래 신유통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무턱대고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에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사업의 방향성과 고객에 대한 고민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평이다.

 

맥도날드 대표에 따르면 보데가의 핵심 가치는 ‘접근성’과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항시 구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기존 오프라인 잡화점이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지역 곳곳에 무인매장을 분포시키고, 이를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것이 오히려 핵심기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 전역의 수많은 무인상점들을 운영하기 위한 ‘재고보충관리’, ‘지역 물류센터 관리’, 무인상점의 시스템 관리인 등 관련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면 보데가는 여론의 평가대로 ‘비싸고 있어 보이는 자판기’에 불과하다.

 

국내 편의점 업계의 SCM 관계자는 “무인상점은 다른 오프라인 매장처럼 건물 임대료나 상주 직원에 대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며 “그렇지만 보데가가 완전히 물류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고 비용을 줄였는지는 의문”이라 밝혔다. 그는 “보데가가 무인매장의 물건이 떨어졌을 때, 어떤 사람이 재고를 보충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면 일반 자판기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시스템”이라 평했다.

 

이 관계자는 “보데가가 ‘값비싼 자판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점포별 재고보충 시스템, 효율적 인력배치 시스템을 해결해야 할 것”이라며 “국내 편의점 업계 또한 관련된 고민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밝혔다.

 

송상화 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는 “이번 보데가 사태를 두고 크게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며 “첫 번째는 타깃 고객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 두 번째는 기업의 방향성이 맞다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인지, 혹시 곁다리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아닌지를 잘 파악하는 것”이라 말했다.



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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