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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고기도 자판기에서 ‘뽑아’ 먹는 시대

by 김동준 기자

2018년 02월 21일

농협, 육류 자판기 선봬…2020년까지 2,000개로 확대

신선도 유지 위해 종이상자로 포장…열전도율 낮아져

판매되는 육류, 대부분 1인가구 겨냥 소포장 제품들

 

구워먹어도, 삶아먹어도, 심지어 날로 먹어도 맛있는 게 고기지만 1인분의 고기를 사려고 대형마트 정육코너를 방문하는 일은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인터넷을 통해 고기를 구매할 수 있다지만 신선도나 원산지 등 신경 쓰이는 부분이 많다. 이에 농협이 선보인 육류 자판기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농협은 지난해 말 사물인터넷을 적용한 스마트 육류 자판기를 대중에 공개했다. 육류의 냉장온도와 수량, 유효기간과 같은 정보를 관리자가 스마트폰 앱으로 손쉽게 관리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육류 자판기는 시범운영 기간을 거친 뒤 2020년까지 모두 2,000대가 설치될 계획이다.

 

육류 자판기, 어떻게 생겼을까

 

그러나 말로만 들어서는 육류 자판기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판기가 설치된 농협중앙회를 직접 방문했다. 현재 육류 자판기는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농협중앙회 1층 로비와 그 주변에 위치한 KT&G 서대문타워 등 두 곳에서 운영 중이다.

 

육류 자판기의 외관은 상품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일반적인 자판기와는 차이가 있다. 유통기한이 긴 가공식품과 달리 신선식품을 판매하는 자판기의 특성 상 온도 유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직사각형 모양의 자판기는 가운데 구매를 위한 키오스크 부분을 제외하면 투박한 박스형의 냉장고로 구성돼 있다. 키오스크 기준 왼쪽에서는 한우가, 오른쪽에서는 한돈이 보관・판매되는 형태다. 각각의 냉장고는 온도 표시계가 있어 내부 온도를 확인할 수 있다.

 

농협중앙회 1층 로비에 설치된 육류 자판기. 지금까지 총 2곳에 육류 자판기가 설치돼 운영중이다. 농협은 오는 2020년까지 2,000대까지 육류 자판기를 늘려나갈 예정이다.

 

농협 관계자는 “육류 자판기의 냉장고는 모듈형으로 만들어져 있다”며 “향후 설치될 장소나 여건에 따라 지금처럼 키오스크 부분과 두 개의 냉장고로 구성될 수도 있고, 한 개의 냉장고로만 운영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육류 자판기를 보러 왔으니, 고기를 한 번 뽑아(?) 봤다. 육류 자판기를 이용하는 방법은 패스트푸드점에서 키오스크를 활용해 주문을 넣을 때와 비슷하다. 원하는 종류의 고기를 선택하고 결제하기를 누르면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결제 단계에서 카드를 기기에 꽂고 기다리면 영수증과 상품이 자판기에서 나온다.

 

일반적인 키오스크로 주문할 때 처럼 터치스크린을 통해 원하는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방문했을 당시 한우 카테고리의 불고기와 국거리용 상품은 품절돼 있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상품은 한우의 경우 등심, 불고기, 국거리용 등 네 종류다. 한돈은 삼겹살, 목살, 앞다리살 등 구이용 제품과 고추장불고기, 간장불고기 등 양념 제품까지 합쳐 총 다섯 종류가 준비돼 있다. 추가적으로 간장닭갈비도 한우 카테고리에서 구매 가능하다.

 

자판기를 통해 구매한 것은 한돈 앞다리살 300g 1인분. 가격은 3,600원이었으니 100g당 1,200원인 셈이다. 인터넷을 통해 앞다리살을 구매할 경우 100g당 1,000원 정도에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시중가 보다는 약간 비싸게 느껴졌다.

 

종이상자에 담긴 고기

 

그러나 비싼 데는 이유가 있었다. 자판기에서 꺼낸 고기는 정육코너에서 구매한 검정색 봉지에 담긴 고기와 생긴 것부터 차이가 있었다. 외관은 고급스러운 종이상자로 포장돼 있었고, 그 안쪽에는 진공포장된 고기가 있었다. 냉장고 안에서 온도가 잘 유지된 덕분인지 종이상자는 매우 차가운 상태였다.

 

하지만 종이상자 안에는 고기만 덩그러니 있을 뿐 온도유지를 위한 냉매제는 보이지 않았다. 자판기에서 꺼내 집까지 가져가는 데 최소 1시간 이상을 소요될 터인데 신선함이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의문은 집에 도착해서 금세 해결됐다. 가방에서 꺼낸 고기가 1시간이 지나도록 냉기를 머금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이상자로 포장된 상품. 열전도율이 낮은 종이 포장재의 특성 때문에 별도의 냉매제가 없어도 육류가 쉽게 변질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고기를 감싸고 있는 포장재인 종이상자에 있었다. 육류 자판기에서 판매되는 상품은 모두 냉동육이 아닌 냉장육이다. 맛이라는 측면에서 냉장육이 냉동육에 비해 강점을 지니지만 보관이라는 측면에서는 약점으로 작용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농협은 열전도율이 낮은 종이상자로 고기를 포장했다. 때문에 구매 후 1~2시간 정도는 변질에 대한 우려에서 벗어날 수 있다.

 

농협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쇠나 철에 비해 종이는 열전도율이 매우 낮다”며 “자판기에서 집까지 가는데 몇 시간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지만 종이상자에 들어있으면 고기에 가해지는 열전도율이 줄어들어서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먹기 쉽게 소포장된 고기

 

육류 자판기에서 판매하는 고기의 또다른 특징은 1인분 위주의 소포장 제품이 대부분의 상품 구색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또한 고기 자체도 굳이 썰지 않고서도 구워먹거나 찌개, 국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손질이 된 상태다. 심지어 양념된 육류의 경우에는 HMR(Home Meal Replacement)이기 때문에 전자레인지에 2분정도만 조리하면 쉽게 먹을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은 모두 늘어나는 1인 가구를 겨냥하고 있다는 게 농협 측 설명이다. 기존에는 하나로마트나 인터넷 쇼핑몰 등 한정된 유통채널만 활용했던 농협이지만 이제는 농축산물 유통채널을 자판기까지 넓히겠다는 복안이다. 또한 매 번 불거졌던 원산지에 대한 우려도 농협이 직접 관리하고 운영하는 자판기인 만큼 어느정도 불식될 것으로 보인다.

 

1인분으로 나온 300g짜리 한돈 앞다리살. 오피스텔, 도시형 생활주택 등 1인가구 밀집지역 위주로 육류 자판기를 설치하겠다는 게 농협 측 계획이다.

 

농협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쇼핑하러 가서 고기 반근만 구매하기가 눈치보일수도 있지만 자판기를 통해서는 남 눈치보지 않고 쉽게 고기를 구매할 수 있다”며 “혼자서 고기를 먹는다고 했을 때 1인용으로 포장된 300g짜리 1팩만 구매하면 남는 고기 없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자판기에 들어가는 육류의 경우 농협이 직접 관리하는 농가에서 바로 가져와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산지 우려도 없다”고 덧붙였다.



김동준 기자

청와대 대변인실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정치부/산업부 기자로도 일했다. 지금은 CLO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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